한 학기를 마치다. (2010년7월14일)

한 학기를 마치며(6월)

오늘 마지막 수업을 했다. 지난 3월 둘째 주부터 어학센터에 중국어공부를 시작한 후, 4개월만이다. 원래는 2주 전인 6월말에 방학을 해서 대부분 학생들이 학기를 마쳤지만, 우리가 한 주 늦게 도착했고, 방계약과 유빈이 학교문제로 일주일이 더 늦어졌던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이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식 명칭은 ‘신세기어언문화중심(新世纪语言文化中心)’이다. 10년 전 천진사범대학 교수인 중국사람과 그 분에게서 중국어를 배우고 그 대학에서 영어전임강사를 하던 미국사람이 시작했던 이 센터는 주로 서양사람들을 대상으로 중국어를 가르쳐 왔다. 이 센터는 학생 개인의 상황에 맞추어서 대부분 1대1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서양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서양회원이 대부분인 건화기금회에서 이 센터를 중국에서 활동하려고 하는 회원들을 위한 어학훈련센터로 하기로 한 것이다.

이 센터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중국선생들은 원래 크리스챤이 아니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신앙심과 선한 계획에 감화되어 지금은 약 2/3가 크리스챤이 되었다. 그래서 수업이나 그 밖의 활동에서도 자연스럽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도 할 수 있고, 함께 기도하고 격려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집사람과 나는 이 센터에서 각각 하루 2시간씩 공부했다. 아내는 중급과정교재로, 나는 고급과정인데 출판된 교재가 없어서 여기서 자체로 만든 교재로 공부하였다. 중국어는 확실히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다. 여기에다 대부분 영어권인 건화회원들과 교류 때문에 영어도 개인적으로 하느라 이번 학기는 어학에 집중했다. 나에게 있어 어학은 외국에 사는 한 평생 짊어져야 할 숙제(!)라고나 할까?

날씨가 무척 덥다. 잔뜩 흐린 저기압에다 푹푹 찌는 더위로 학기 마지막에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한 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감사기도를 드린다. 학생신분으로 공부했던 행복한 시간을 마치고, 다음 학기부터는 새로운 곳에서 활동한다. 이 센터가 주님의 ‘기쁜소식’을 전하기 위해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좋은 훈련소로 있어주길 바란다.

천진대외경제무역학원에서 일하게 되다

수업후에 학생들과 함께 찰칵

엊그제 학교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계약서가 완성되었으니 학교에 와서 정식으로 서명하자는 내용이었다. 학교와 관계를 맺은지 1달 반만에 일이 성사되었다.

지난 3월1일 이곳에 온 후, 어학센터에서 중국어를 배우면서 한편으론 현지상황도 알아보며 장기간 안정된 신분으로 있을 곳을 찾았다. 여기 오기 전에 홍콩의 건화기금회를 통해 천진어학센터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건화기금회가 모든 일을 안배해주는 줄 알았는데, 와서보니 기금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간단한 정도이고-적어도 내 입장에선- 중요한 일은 본인이 직접 개척해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건화기금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회원은 서양사람들이라서 언어적으로나,  외모적으로나, 문화나 사고방식으로나 중국에 금방 적응하기가 어렵고 그런 의미에서 아주 간단한 일이라도 일을 대행해 줄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다가 대부분의 서양회원들이 단지 모국어인 영어이외에 특별한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없어서 대부분 임시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직업비자를 얻지 못하고 어학센터에서 공부하면서 학생비자로 지내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무신론 사상을 공식으로 천명하는 중국입장에서 볼 때,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식교원으로 채용하기 보다는 임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지 30년이 지난 오늘, 연안지방의 대도시같은 곳에는 서양사람들이 많아서 중국입장에서 볼 때, 그리 아쉬울 것이 없는 듯 하다. 마치 현재 중국의 산업상황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다시말해, 예전엔 자국의 자본과 기술이 부족했을 때에는,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환영이었지만, 지금은 자체의 자본과 기술력이 어느정도 갖춰져서, 외국인도 선별적으로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에서 ‘기쁜소식’을 전하는 것도 시대에 맞는 전략일 필요할 것이다. 열정과 신앙의 바탕위에서 지식과 기술을 갖춰야 할 것이다.

7월 7일 나는 부학장과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부학장은 나에게 “이제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으니 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함께 오랜기간 동안 합작하자”고 하였다. 여기서 잠시 내가 일할 학교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은 대도시마다 대외경제무역을 전문으로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을 갖고 있다. 북경에는 대외경제무역대학이라는 4년제 대학이 있고, 천진에는 이와 유사한 천진대외경제무역학원이라는 3년제 전문대학이 있다. 내 생각에는 현재 천진이 한국의 인천과 같이 수도로 가는 길목과 같은 항구도시이며 산업도시라서, 장차 이곳도 북경과 같은 4년제 대학으로 발전시킬 것 같다. 특별히 이곳 천진에는 미국의 보잉사와 함께 세계 항공기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유럽의 유로버스사와 같은 초대형 공장을 비롯해 수많은 외국기업이 있고, 한국기업만 해도 삼성전자를 비롯해서 한국기업이  몇백개나 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곳 대학은 2년전에 한국어과를 개설해서 올해는 입학정원을 1.5배 더 늘린다고 한다.

지난 5월중순부터 시간강사로 이곳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 중 집안 형편이 넉넉한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평범하거나 아니면 부모가 농민인 서민자제들도 꽤 있다. 물론 내가 예전에 유학했던 남경대학과 같은 명문대학교와 비교해 보면 여러가지 면에서 부족한 면이 많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순박하고 소박한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졸업 후, 한국기업이나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싶어한다.

학기말 고사기간이다. 그리고 곧 방학이 되면 학생들은 자기들의 고향으로 떠날 것이다. 천진이라는 도시, 대외경제무역학원이라는 학교, 그리고 학생들. 주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부르시고 인연을 맺어주신 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를 통해서 어떻게 주님께 영광을 드릴까? 그리고 주님은 이 중국땅과 더 나아가 이북에 어떻게 당신의 계획을 이루실 건가? 등등. 기도하면서 많은 질문을 던져 보지만 주님은 침묵속에서 하나씩 이끌어주시는 것 같다. 마치 한밤중에 차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갈 때 운전자는 헤드라이트에 의지해서 바로 앞에 보이는 전방만 주시하고 달리듯이, 나 역시 그러한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 주님께 감사드리고 함께 기도하고 힘이 되어준 주님안의 벗들께 감사드린다. 주님께선 우리를 통해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길 간구하며 이 길을 가야겠다.

“중국어의 밤”(2010년6월11일)

어느나라 부부가 최고로 이해하나?1

매 학기말에 이곳 어학센터에는 ‘중국어의 밤(中文之夜)’라는 행사를 한다. 오후 7시에 4층에 있는 영어국제예배당에서 했다. 우리가족은 노래 한곡을 부르기로 되어 있어서 며칠전부터 연습을 하였다. 유빈이를 데리고 서둘러서 행사장으로 갔다. 유빈이는 프로그램 첫부분에 남자학생3명이 부르는 노래에 같이 춤을 춰서 행사분위기를 즐겁게 하였다. 우리가족은 여섯번째로 하였는데 화목한 가정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원래 이 노래는 몇 년전 춘절 때 중앙방송에서 하는 ‘춘절만회’라는 프로그램에서 불러 큰 인기를 얻은 노래라고 한다. 그러나 중간에 가사를 놓쳐서 약간 당황했다. 그리고 한국인부부, 미국인부부, 독일인 부부가 참여해서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는데, 아내와 남편에게 각각 문제를 내서 답이 일치하면 점수를 얻는 방식이었다.

어느나라 부부가 최고로 이해하나?2

서로 얼마나 상대방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는 프로그램인데 미국에서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결혼생활이 짧을수록 점수가 높고, 길수록 점수가 낮게 나왔다. 그래서 결혼한지 5년 된 독일인 부부가 1등을, 우리가 2등을, 결혼한지 24년인 된 미국인 부부는 꼴찌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어학훈련을 마치고 서부내륙으로 활동하러 떠나는 미국인 회원이 나와서 송별의 노래를 부르며 송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주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길 기도한다.

承德여행(2010.4.21~24)

승덕의 숙소

센터에서 매 학기마다 여행을 간다. 봄학기는 근처지방을 가고, 가을학기는 먼 지방을 간다. 이번학기는 하북성 승덕으로 여행을 갔다. 승덕은 청황실의 제2궁전이 있는 곳이다. 해마다 청나라 황제는 여름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5월에 와서 10월까지 승덕에 머물면서 국사를 봤다고 한다. 그리고 일년 중 나머지는 북경에 머물렀다. 그래서 승덕은 청나라 시절 제2의 정치중심지였다고 한다. 조선후기 박지원이 청나라 사신으로 와서 쓴 ‘열하일기’가 바로 승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熱河라는 강이 승덕에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승덕은 청나라 최전성기 시절인 강희-건룽-옹정황제 삼대에 이르는 시기에 많은 건물이 지어졌고, 그래서 시내 중심에 강희황제의 동상이 있을 정도로 청나라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만주족과 몽고족 자치현이 있을 정도로 만주와 몽고의 풍속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기간 동안 유빈이를 돌봐줄 수 없기 때문에 학교에 휴가신청을 하고, 유빈이를 데리고 여행을 갔다. 센터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승덕까지 7시간 걸렸다. 점심식사하고 떠나서 도착하니, 저녁식사시간이 훨씬 지났다. 숙소에 짐을 풀고 거기서 식사를 했다. 숙소는 고풍스러운 곳이었다. 예전에 이곳에서 중국고전드라마를 촬영한 곳이라고 한다.

함께 온 사람 중에는 우리부부 외에 독일인 부부, 미국인부부 2쌍도 함께 왔는데, 다들 꼬마들을 데리고 왔다. 아이들이 유빈이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잘 놀았다. 이들을 보면서 예전 남경에 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낯선 곳에 와서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데, 이들은 무슨 뜻을 갔고 있는 걸까? 독일인 부부는 올해 우리랑 함께 건화회원으로 온 사람들인데, 중국어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중국어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인 부부들은 여기 온지 5년, 3년 되는데, 그래도 외국인들 중에서는 제법 잘하는 편이다. 이들은 기도하면서 활동하는 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다들 드러내놓고 다니진 않지만-사실, 중국에선 드러낼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신앙심이 깊은 사람들 같다.

청나라 강희제 초상앞에서

첫날은 황제의 여름별장궁이었던 避暑山莊을 갔고, 둘째날은 라마교사원 두곳을 갔다. 청나라 황실이 대외관계를 중시여겼는데, 특별히 티벳트와의 관계를 중히 여겨서 지금 티벳 라사에 있는 포탈라궁과 같은 모습을 한 사원을 지었다. 그래서 티벳의 달라이라마가 자주 이곳에 와서 청황제에게 설법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청나라는 종교를 비롯한 대외관계에 대해서 무척 관용적이었던 것 같다. 이 당시 천주교도 성당을 짓고 포교활동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라가 클수록 관용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하는 것 같다. 당나라도 그랬고, 원나라도 그랬고, 청나라도 그랬으니 말이다. 조선시대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이러한 청나라의 기풍을 보면서 폐쇄적이고 사색당파에 골몰하는 조선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얼마나 한숨을 지었을까? 몇백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곳 열하(승덕)에서 박지원과 같은 마음으로 한반도를 생각해 본다.

마지막날은 방망이산에 갔다. 산정상이 넘버원과 같은 모양을 한 큰 바위가 있는 곳인데 중국사람들은 방망이산이라고 부른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인데 참 신기하였다. 그리 높지 않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쉬엄쉬엄 갔는데도 2시간만이 올랐다.

중국 공주?

하산 후에, 점심을 먹고 천진에 오니 밤이 되었다. 아내는 여행내내 중국음식만 먹어서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고 해서, 한국식당가서 얼큰한 낙지전골을 먹었는데, 유빈이는 별로 먹지 않았다. 물어보니, 중국음식이 좋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중국음식으로 입맛이 길들여져 그런가 보다. 다행히 나는 여행기간에 음식으로 그리 힘들지 않아서 아무 음식이든 잘 먹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무 음식이나 잘 적응하게 해주셔서 감사!

방망이산 등산길에

천진의 만리장성(2010.5.21~22)

S7302130

봄학기마다 센터에서 선생과 학생들이 천진에 있는 장성에 간다. 맨 처음에 장성에 가서 야영을 할 거라는 말에 북경의 장성인 줄 알았다. 그런데 천진에도 장성이 있다는 말에 장성이 굉장히 길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 장성이 멀리 신장까지 있으니 엄청나게 긴 건축물이긴 하다.

집사람은 아파서 못갔고, 나는 유빈이를 데리고 아침 8시까지 센터에 갔다. 센터에는 텐트와 침낭이 있어서 버스에 실고 8시30분에 떠났다. 3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려서 천진과 하북성의 경계지점인 황야관 장성에 도착했다.

점심을 갖고 간 도시락으로 먹고 장성을 가로질러 하북성 농촌마을로 내려가서 촌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양사람들이 대부분인 우리일행을 보고 다들 신기해 하였다.

저녁에 침낭과 텐트를 갖고 장성 성곽에 올라갔다. 나는 유빈이 짐까지 챙겨갔고 오르느라 애를 먹었다. 저녁은 컵라면으로 해결하고 잠은 3개 성곽에 나누어서 잤다. 유빈이는 야영을 처음 접해서 인지 몹시 흥분되어 제대로 잠을 자질 못하였다. 옆 텐트에 한 살 어린 미국여자아이와 렌턴 갖고 한참 놀다가 간신히 양쪽 부모의 설득(!)으로 잠이 들었다. 새벽에 바람에 텐트입구가 펄럭거리고 새소리에 잠을 깼다. 그래도 공기가 신선해서 그런지 피곤하진 않았다. 텐트를 걷고 장성 밑으로 갖고 내려와서 차에 넣은 다음, 마침내 장성을 따라 걷기가 시작되었다. 차는 우리가 내릴 장소로 떠났고 우리는 장성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걸었다. 어떤 곳은 사진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계단도 있고 폭도 넓었지만 어떤 곳은 아주 옛날에 만들어 놓은 것이라서 성벽도 한쪽만 있고, 계단도 자연돌로 울퉁불통하게 되어있어서 조심해서 내려가고 올라가야 했다. 유빈이가 힘들다고 하면서도 잘 걸어줘서 다행이다.

모택동이 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남자라 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는데, 잠깐 맛보기만 했지만 이 높은 곳을 그렇게 길게 쌓은 사람들의 인내와 고통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인생도 마치 장성의 길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성을 걷다보니 인생의 길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려와서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후 4시 경에 돌아왔다.

S730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