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China, In China, With China, From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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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건화기금회소속 회원으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의 상황이 다른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크리스챤의 정신을 지니며 전문기술과 지식을 통해 중국에 봉사하려는 목적으로 설립한 건화기금회라는 단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건화기금회는 매년 설연휴 후, 연례회의를 갖는다. 올해는 2월8일부터 13일까지 태국 치앙마이에서 모였다. 회원의 대부분이 서양사람들이고, 한국인은 우리가 유일하였다. 그래서 회의기간 내내 영어로 진행되어서 소통에 적잖이 어려움을 겪었다. 해외에서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원활한 언어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주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 언어를 꾸준히 그리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회의를 통해서 중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많은 회원들을 알게 되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도전과 위로와 동료애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2,30년 동안 활동한 회원들이 나눠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 한편으론 짠~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만을 의지하여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가족을 이끌고- 옮겨 다니는 이야기를 들으며 ‘제2의 아브라함가족’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가지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두가지를 나누고 싶다. 하나는 매일 아침마다 소그룹별 기도시간에 있었던 위로와 격려의 기도를 받았던 일이다. 우리 조는 이 시간에 매일 한두사람씩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을 위해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는데, 우리 차례가 되어 나는 중국과 더 나아가 이북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 이야기와 그 비전을 이야기하였다. 이야기가 끝나자, 조원들은 나와 내 아내를 둘러싸고 손을 얹고 기도를 하였는데, 영적으로 깊은 위로를 받았다. “주님안에서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하는 체험을 하였다.

두번째는 이번 회의 오전시간마다 한 강의였다.  강사는 30년전에 건화기금회 창립멤버 중 한분이고, 중국과 아시아선교를 위해서 일생을 헌신해 오신 왕목사님이었다. 그분은 자신의 삶과 활동과 비전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는데, 특별히 ‘중국으로, 중국에서, 중국과 함께, 중국으로부터’라는 도식을 통해 중국선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설명하신 부분이 감명깊었다.

왕목사님은 그동안 중국선교는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오랫동안 외국에서 중국으로 어떻게 갈 것인지(to,向) 여러가지로 시도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안에는(in,在) 주님의 백성들이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기쁜소식을 간직해 오고 있었고, 개혁개방이후, 중국 ‘안’과 중국 ‘으로’가 함께 협력하여(with,同) 기쁜소식을 힘차게 증거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실이 오늘날 전체인구의 7%인 약1억의 크리스챤이라는 수확의 때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 중국의 크리스챤은 중국에서부터(from,从)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증언하였다. 그러면서 급속히 발전하는 수확의 때에 교회를 보다 내실있게 양육하고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리더들을 육성하기 위한 ‘호산나기금회'(www.hosanna.org.hk)를 설립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고 하셨다.

강의를 들으면서 큰 감동과 함께 부러움을 느꼈다. 그 부러움이란 다름아닌 이북을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우리민족을 불쌍히 보사, 중국에서 역사하시는 당신의 놀라우신 능력을 이북에서도 보여주시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춘절의 폭죽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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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릉, 쾅, 쾅”

“폭약소리에 무덤덤하면 중국생활에 적응된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중국사람은 참으로 요란하게 새해를 맞이한다.  지금 이 글도 마치 전쟁터 대포소리같은 폭약소리를 들으며 쓰고 있다. 중국사람들이  이처럼 야단법석을 떨며 새해를 맞이하는 이유는 뭘까? 중국의 옛날이야기에 이런 풍속에 대한 이유가 다음과 같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먼 옛날에 ‘니엔'(年)이라는 괴물이 있었단다. 그 괴물은 매년 새해가 시작하는 무렵에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어서 사람들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모두 산에 도망가서 숨어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늙은 여행객이 마을에 왔는데 사람들을 따라 도망가지 않고 마을에 남아 있다가 괴물을 만나게 되었다. 괴물은 노인을 잡아먹으려 무섭게 달려들었는데, 노인은 잽싸게 품에서 화약을 꺼내서 괴물을 향해 던졌다. “펑”하는 엄청난 소리에 괴물은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 버리고 마을은 평온해졌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노인이 한 방법을 배워서 매년 새해무렵에 폭약을 떠트려 ‘니엔’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땅이 흔들리고, 귀가 멍멍하고, 화약연기로 푸였고 매퀘한 새해맞이는 자정이 다가올수록 그 강도가 점점 심해져 자정이 되면 그 정도가 절정에 다다른다.  창문너머로 이 광경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요한 묵시록(계시록)에서 묘사하는 종말의 광경이 떠올랐다:

“어린 양이 일곱째 봉인을 떼셨을 때에 약 반 시간 동안 하늘에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 그 뒤에 그 천사는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제단 불을 가득히 담아서 땅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묵시 8:1, 5)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는 것! 그것은 설레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익숙한 것, 지금 상태와의 결별이요, 낯설고 불확실한 것과 대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두려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를 맞는다는 것 안에는 종말과 창조라는 두 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중국의 옛 이야기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이 ‘年’이라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오는 인간의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한 두려움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간과 역사의 최종단계인 종말에 대한 공포로 연장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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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엔 너무나 연약한 존재인 것 같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新年’을 피해 도망쳐 버리고 역사의 종말에 지옥과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오직 ‘노인’-중국에서 老人이란 상징은 생물학적 늙음이라기 보다는 현자를 의미한다-만이 그 두려움과 회피를 극복해 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의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적 눈으로 재해석하면, 인간안에 내재해 있는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 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메시아'(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우리에게 미래는, 새로운 한 해는 더 이상 낯설고 도망가야 할 심판이 아니라,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 22:20)라고 기쁘게 맞이할 때인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천둥소리를 내며 오시는 심판자는 두려움이 아니라 새해를 여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여실 구원자인 것이다.

땅을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폭죽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으며 나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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