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희망을 믿으며(성주간과 부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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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깍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 자가 어디 있었느냐?”(이사 53:7-8)

이곳 천진에 있는 천주교 한인교회는 한국 예수회에서 맡고 있다. 현재 담당사제가 전에 내가 예수회 있을 때 1년 선배여서, 가끔 서로 안부를 묻곤 한다. 지난 월요일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성주간과 부활에 특강과 전례를 위해서 한국서 반가운 손님이 왔단다. 전화를 바꾸어 준다고 해서 목소리를 들으니 수도회 입회동기 사제의 목소리였다. 한국에서 서로 바빠서 거의 만나지 못하다가 이 낯선 땅에서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반가웠다.

우리는 수요일 저녁 만나서 함께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마침, 식구들은 처남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성주간과 부활절을 홀로 지내고 있었던 차에 주님이 미리 반가운 선물을 주신 것 같았다. 우리는 오랫만에 만나서 친구들, 선후배 근황을 묻고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 친구로부터 너무도 뜻밖의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예수회 시절에 함께 지냈던 분인데, 당시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막 귀국하여 서강대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면서 수도회 내 양성책임을 맡으셨던 신부님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이었다. 그분은 내가 철학과정 때 한 집에서 함께 살았던 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내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하소연을 들어주신 털털한 분이셨다. 그 후 내가 수도회를 나오고 성공회로 왔을 때도 당시 한국예수회를 총책임맡은 관구장으로서 바쁜 와중에도 나에게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해 주시고, 여러모로 격려해 주셨던 분이셨다.

그러던 그분이 몇년전 관구장 임기를 마치고 필리핀에서 동아시아 양성책임자로 가셨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작년 가을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투병하시다,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50후반의 나이로 지난 성지주일 때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그분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집에는 강아지 한마리가 하염없이 우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상담심리학을 전공하셨던 그분께서 해 준 말이 기억난다: “카운셀러는 상담이 끝난 뒤, 그 일들을 잊어버려야 해. 안그러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거든.”,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조언해 주셨던 분이셨는데…

사제로 산다는 것, 아니 예수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추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내뱉는 수많은 말들-독설, 몰이해, 비난, 하소연, 후회, 편협함,이기적 욕망-을 묵묵히 듣고, 하느님의 대자대비 안에서 녹여내야 하는데, 우리 역시 불완전하고 연약한 지라 그 무게를 감당할 길이 없어 안으로 안으로 마음의 병이 쌓아만 가는 가 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안고 한발한발 완덕으로 나간다는 것이 그 얼마나 힘든 길인가!

문득 영화 ‘미션’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노예사냥꾼이었던 멘도사가 질투와 증오에 눈이 멀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고, 그 절망의 한 순간에서 한줄기 희망의 길을 찾아 폭포 위를 기어 올라가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에는 아직도 끊지 못하고 질질 끌고 갈 수 밖에 없는 갑옷과 같은 모진 인생의 고통들.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 양을 바라본다. 예수님의 고통이 어느 때보다도 절절히 다가온다. 그분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이 너무나 밉다. 그리고 그런 분을 본받고 따르겠다고 나섰다가 같은 운명을 걸어간 그 신부님이 너무 마음 아프다. 그리고 그 길을 살아가야겠다고 하는 내가 인간적으로 측은하다.

부활절이 다시 돌아왔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다시 오는 것처럼. 예수님은 그 극심한 고통으로부터 온전히 치유되셨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고통 너머에 있는 온전한 치유를 갈망하며 기다리고 있다. 이제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나서 말없는 어린양처럼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야겠다. 오직 그 고통의 길을 걸어 가야만 그 너머에 있는 부활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기에.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묵시 21; 3-4)

是則行, 行則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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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장)
오랫동안 저에게‘있음(being)’과‘행함(doing)’은 화두처럼 풀어야 할 내적 숙제였습니다. 마치 마리아와 마르타와 같은 관계라고나 할까요. 물론‘활동 속에 관상’이라는훌륭한 영성적 지표를 배웠지만 실존적으로 온전히 녹여내는 것은 그리 녹녹치 않은 과제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주님은 전혀 새로운‘삶의 자리’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것은 중국이란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제가 태어나서 자란 한국의 환경과 무척 다른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 가장 큰 도전은 교회의 문화를 거의, 아니 전혀 향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 안에서 자라고 성소를 키워왔던 저에겐 이런 환경은‘있음’과‘행함’에 대한 관계설정에 고심하던 기반이 사실은‘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고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라온 저에게 중국은 참으로 낯선‘광야’입니다. 거기에는 마리아가 머물 수 있는‘주님의 발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또한 거기에는 마르타가 손님을 접대하며 일할 수 있는‘주님의 공간’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단지, 누런 대지와 회색도시 안에서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치적 구호와 경제적 활동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 속에서 저는 주님을 찾아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제도와 그 안의 문화 속에서 존재해 왔던 신자라는 정체성과 사제라는 정체성은 그 기반이 완전히 바뀐 상태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변해야만 했습니다.
‘내 존재의 근거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있나, 무엇을 행하고 행하여야 하나?’ 저에게는 하나같이 그리 녹녹치 않은 질문들입니다. 동시에 이런 물음을 그저 한적하게 사색할 수 있는 여유로운 생활환경이 아니라, 허허벌판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냥하듯 하루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실제적 환경 안에서 풀어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이렇게‘행(行)’하며 고뇌하고‘있다[是〕  ’는 것이 살아있다는 것이요, 생명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신학교에서 들려오는 성무일과 낭송소리, 성당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파이프오르간 소리, 수도원에서 보는 아름다운 성화와 깊은 영성체험, 교회에서 행한 전례와 설교, 그리고 교인들과의 봉사와 친교를 이곳에선 맛볼 수 없지만, 그러나 내 안에는 여전히‘생명’이 살아 숨쉬고, 존재의 근거를 갈망하고 그 길을 향해 가고자 하는‘열망’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저와 함께 계시고, 행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이 광야가 저에게 교회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익숙해 있던 교회라는‘도시’와는 다른 ‘광야’라는 교회에서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이속에서 저는 있음(being)을 배우고 행함(doing)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둘이 이제 제 안에서 점차 통합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있다는 것이 행하는 것이고, 행하는 것이 있다는 것〔是則行, 行則是〕’임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생명이 있기 때문이며, 이 생명은 그 원천인 주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광야에서 저는 주님의 은총을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요한14,6)
추신: 그동안 제가 행한 외적인 일을 한정된지면에 말하기보다는 저의 내적여정을 미약하게나마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무슨 일을
행했느냐고 물으신다면, 기회가 되는 데로 종종 소식 보내 드리겠습니다.

황현애(프란체스카) 사모님, 딸 이유빈(에스더)와 함께 천진사범대학MBA과정 학생들이 주최한 2010년 성탄전야 송년회 행사에서 가족소개와 인사말 모습

<2012년 봄호 성우회 소식지에 실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