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산자이)을 위한 변명

모조품을 한국에선 ‘짝퉁’이라고 부릅니다. ‘짝퉁’이란 말 속엔 원조(元祖)가 아닌 아류에 불과하다는 일종의 얕잡아 보는 의미가 강하게 풍기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만큼 ‘원조’, ‘오리지널’을 병적으로 집착하는 곳도 드문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식당간판을 보면 ‘원조000’, ‘정통원조000’, ‘오리지널 원조000’ 등. 서로가 자신이 진짜요, 정통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일찍이 단채 신채호 선생은 『낭객의 신년만필』에서 “우리 조선사람은 매양 이해(利害)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여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라고 한탄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오리지널’이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다는 깊은 ‘열등감’이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에선 모조품을 ‘짝퉁’이라고 부른다면 중국에선 ‘산자이(山寨)’라고 부릅니다. 우리 발음으로 하면 ‘산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의 유래가 참 재미있습니다. ‘산채’라는 말은 무협지나 고전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말입니다. 예컨대 ‘홍길동전’에 나오는 활빈당이 머무르는 산채, 무림의 고수들과 그 추종자들이 있는 산채 등등.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수호지(水滸誌)’에 108명의 영웅호걸의 소굴, ‘양산박(梁山泊)’이라고 하겠습니다. 송나라 시대 부패한 관료들에 항거한 민초들의 활동을 바탕으로 한 ‘수호지’는 지금의 산동성에 있는 양산박을 배경으로 한 중국의 대표적인 고대소설입니다. 기존 지배집단에서 보자면 ‘산자이’란 ‘산적들의 소굴’을 뜻하지만, 그곳의 도둑은 못된 악당보다는 양산박의 의협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산적이란 중국인에게 있어서 남이 아닌 바로 자신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농민들은 폭정을 참지 못하고 도망간 곳이 산채(산자이)이며, 그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인물이 나왔습니다.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 그리고 장개석의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모택동까지 모두 그 출신은 비천한 산적무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 산자이(산채)는 부정보다 긍정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모조품에 산자이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에서 그들의 관대한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산적들이 특허권, 저작권 등을 지키는 일은 드물 것입니다. 이들이 만든 것은 자연히 모조품이 되며 우리는 이를 ‘짝퉁’이라고 하지요. 그러면 산자이가 세력을 떨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은 뭔가요?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릴 정도로 괄목성장했지만, 극심한 부의 편차는 대중의 소비능력을 하락시킵니다. 국가가 부유하다고 모두가 부유한 것은 아닙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서 트렌드를 느끼지만 트렌드를 쫓아갈 여유가 없는 이들이 다수입니다. 산자이에 대한 수요가 꿈틀거리는 셈입니다. 여기에 애국심이라는 감정이 살짝 덧칠되면 산자이 구입에 대한 감정적 합법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비슷한 공정을 거친 제품은 비슷한 가격에 팔리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여깁니다. 제품의 브랜드는 그들에게 아직까진 그저 그림과 기호에 불과한 건데 그것이 중국산 제품 원가의 다수를 점하는 현실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한편 제조업자는 외국 기술과 브랜드를 하청 받아서 적은 마진을 남기느니, 저렴한 산자이 제품을 만들어 더 많은 마진을 남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방정부는 그것이 정품이든 모조품이든 세수를 확대하고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눈은 감습니다. 오히려 취업문제 해결과 국부유출을 막는다는 명분도 있으니까요. 단지 가끔씩 하는 모조품에 대한 단속은 소비자 보호보다는 통상마찰 회피때문입니다. 사실 지적재산권 소송에 다국적 기업이 승소한 사례는 별로 없습니다. 산자이는 이처럼 불법과 합법 그리고 회색지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시장을 발굴하고 육성시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전기자동차입니다. 사실 세계 최초의 상용 전기자동차는 미국이 만들었지만, 미국의 석유업체들과 자동차업체들의 압력으로 폐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대자동차가 공개한 국산1호 고속전기차 블루온은 대당 가격이 최소 50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선 변변치 않은 생산공장에서 500만원짜리 전기자동차를 뚝딱 만들어 매 해 몇십만 대를 시장에 풀고 있습니다. 물론 기능적으로 뚜렷한 격차가 있겠지만, 단순가격만 놓고보면 10배 가량 차이가 납니다.

최근에 중국정부가 발표한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 향후 7대 신흥전략산업을 발표했습니다. 그 중 ‘신에너지 자동차’사업이 속해 있습니다. 세계최초로 전기택시를 상용화한 ‘비야디(BYD)자동차’회사는 비즈니스 워크가 선정한 ‘2009년 세계최고 업적을 기록한 100대 과학기술 기업’에서 애플을 제치고 중국기업으로 사상 처음으로 1위를 달성했습니다. 이 회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2008년 이 회사의 지분 10%를 매입한 곳이며, 워런 버핏은 2010년 9월 비야디 본사를 방문하여 비야디 지분을 늘리는 방안을 회사 관계자와 논의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는 자신들의 전기자동차를 버렸지만, 머지않아 미국은 중국에서 자신들이 버린 ‘산채’를 수입해서 타야 할 날이 올 지 모릅니다.

투자위험이 높은 영역에 산자이(산채)로 대변되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뛰어들어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격을 메워 주면서 중국을 기술대국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부족한 기술은 모방과 경험으로 매웁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보물들을 건져 올리고 있습니다. 그 최전선에 우리가 그렇게 경멸하는 짝퉁, 산채(산자이)들이 있습니다.

중국 천진의 한 산자이(산채)에서

부언: 몇 년 전 저희 교단의 한 신부님이 우연히 성공회 대성당 마당을 지나가다가 방문객들의 대화를 듣고 화가 나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방문객들이 성공회를 ‘천주교 짝퉁’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분들의 교회사와 신학에 대한 무지의 소치를 탓하기 전에, 저는 한국인의 의식 안에 내재되어 있는 ‘오리지널 콤플렉스’를 반성해 보았습니다. 중국에 와서 모조품을 ‘산자이(산채)’라고 부르는 중국인들의 의식구조를 생각해 보면서 어쩌면 이 산자이 정신이 갖고 있는 긍정성을 배우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도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과도 같은 갈릴리에서 108명의 산적들처럼 당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하느님 나라 최전선에 계셨던 것은 아닐까요?

성공회가 천주교의 산자이(짝퉁)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한국전통문화가 중국문화의 산자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한국현대대중문화가 서구대중문화의 산자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산자이(짝퉁)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게 어떨가요? 왜냐하면 산자이는 단지 짝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온갖 것을 한데 섞고 비벼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원조를 능가할 수도, 아니 홍길동전의 율도국(硉島國)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산자이의 위대함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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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성 연안 ‘산채(山寨)’에서 초기 공산당 지도자 모택동과 주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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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선출된 중국 공산당 새 지도부 모습

중국교회 지도자 정광훈 주교 서거

중국교회의 지도자 정광훈(丁光训)주교께서 2012년 11월 22일 오전 10시 강소성(江苏省) 남경(南京)시에서 향년 98세로 돌아가셨다.

1915년 9월 20일 상해에서 태어난 정광훈 주교는 미국 성공회가 설립한 상해 성 요한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성공회 사제로 서품 받은 그는 YMCA간사, 중화성공회 상해 구주교회(救主堂)보좌사제, 상해국제교회(国际教堂) 사제로 봉직하였다. 그 후, 캐나다에서 기독교학생회 선교간사로 일하다가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런 다음,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기독학생연맹 총무로 일하였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된 후, 그는 동료들의 우려와 만류를 뒤로 하고, 조국에 돌아가 사회주의체제하에 놓인 교회를 위하여 일하였다. 당시, 화동지역 12개 신학교가 남경에서 금릉연합신학원으로 합병되었을 때, 원장을 맡아서 후진양성에 힘썼고, 1955년 성공회 절강교구 주교로 피선되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와중에는 모든 종교기관이 폐쇄되는 바람에 그 역시 혹독한 탄압을 받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노선으로 전환되면서 중국의 종교가 복원됨에 따라 그는 다시 문을 연 금릉연합신학원 원장 및 남경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면서 신학계와 지식인 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 동시에 중국기독교협의회를 설립하여 회장을 역임하면서 중국교회 재건에 노력하였다. 또한 애덕기금회를 설립하여 자선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역임하여 정부에 대하여 종교가 올바르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정광훈 주교의 서거소식이 알려지자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을 위시하여 종교계, 지식인계 및 각계각층의 신자와 대중들로부터 애도의 뜻이 전해져 왔다. 11월 27일 오전10시30분 남경시 우화구(雨花区) 장례식장에서 고별식이 거행되었다. 많은 꽃들로 둘러싸인 그의 몸 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기가 덮어져 있었고, 호금도(胡锦涛)주석을 비롯한 중국지도부의 애도의 전문과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서 화장을 치뤘다.

故 정광훈 주교의 추모예배는 12월 8일 오후 1시30분 남경 막추로교회(莫愁路教堂)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고별식 뉴스:   http://v.ifeng.com/vblog/news/201211/e3699808-7e63-41ef-aaa4-7645048378ea.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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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자식교육열

얼마전 한국에선 수능시험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선 ‘高考’라고 불리는 대입시험이 있는데, 각 지방마다 일정 및 전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매년 6월에 있습니다.  한국처럼 중국도 대입시험결과가 발표되면 7,8월 두 달간 순차적인 대학지원 및 전형이 진행됩니다.

중국의 대학은 4년제의 경우 대학원이 있는 공립대학 학과로 구성된 ‘본1’과 대학원이 없는 공립대학 및 극히 일부 유명 사립대학 학과로 구성된 ‘본2’, 그리고 사립대학 및 공립대학에서 투자한 사립 독립학원으로 구성된 ‘본3’으로 나뉩니다. 전문대의 경우는 공립 전문대인 ‘전1’과 사립 전문대인 ‘전2’로 구분됩니다.  6월 말부터 ‘본1’이 시작돼 ‘전2’의 경우 8월말까지 전형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본1,  그 중에서도 북경대, 청화대, 남경대, 복단대 등 최고명문에 어느 학교의 누가 들어가느냐가 됩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인이 명문대에 들어가게 되면 서로 축하해주고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이런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걸까요? 중국대학은 각 학과의 학생 모집인원이 각 직할시, 省 별로 정해집니다. 예를 들어 북경대학 중문학과에는 각 직할시, 성별로 각각 인원이 몇 명이라는 식입니다. 수시가 따로 없는 중국 대입 구조상 청화대학이나 북경대학 입학생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성 수석, 시 수석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물론 최고의 명문고등학교에서는 다수의 합격자를 내기도 합니다.

이런 명문대 입학생 부모의 직업 중에는 의외로 대학교수 및 직원자녀, 초중고 교사자녀가 많은 것이 눈에 뜁니다. 많이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에서는 아직 특수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교 교직원이 고소득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런 상황은 지방으로 갈수록 더 강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런 현상은 중국 특유의 ‘關系’문화와도 관련이 있겠지만 자녀들에 대한 교육방식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관계문화는 교직원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서로 배려해 주고 심지어는 대입전형 시 특혜를 주는 상황을 얘기합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심각한 교육과열국가입니다. 북경, 상해 같은 대도시부터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태어나면서부터 지역 유명 유아원에 보내려 경쟁을 하고, 지역 유명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찬조금이라는 일종의 입학기부금 경쟁, 중학교 입시경쟁, 가장 치열하다는 고등학교 입시경쟁, 그리고 세계제일이라는 대입경쟁에 이르기까지 경쟁의 연속입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학교대로 우열반, 방과후반, 방학중 반을 운영하고 다양한 사설학원도 모자라 현직교사의 과외까지도 공개적으로 묵인되는 현상을 포함하면 중국전역이 강남 안부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모든 교육기관 입학은 관계와 돈이 전제돼야 합니다. 여기에 중학교 입시부터는 학생 개인의 실력이 더해져야 이른바 명문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고, 대학은 여기에 지역운과 시운까지 합해져야 명문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중간규모의 도시의 유치원부터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 도시 대학 부속 유치원이 제일 좋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대학의 유치원 혹은 그 대학의 아는 사람이 필수입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고 또 그 직업에 따라 외지인이면 그에 더하여 찬조금을 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대학의 유치원 교직원, 대학 관계자는 당연히 특혜를 받습니다. 그런 다음 얼마 안남은 자리를 놔누고 각종 관계를 통한 돈의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초등학교부터는 본격적인 돈의 전쟁입니다. 학교 관계자는 전액 무료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학비 및 찬조금이 천차만별입니다. 중학교 이상부터 그 지역 명문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중국 내 명문 고등학교들을 대상으로 북경대나 청화대는 ‘包送’이라는 특수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성적에 의한 추천입학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한국의 교장추천제와 비슷하지만 그 대상 학교가 명확히 정해져 있고 그 학교별 할당인원 또한 정해져 있다는 것이 다릅니다.

이런 복잡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돈과 관계는 그 다음입니다. 중국이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금 같은 한판승부 식의 대입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그나마 이 제도가 돈과 관계에서 가장 자유롭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성적자체가 턱도 없으면 일반적인 수준의 돈과 관계는 무용지물인게 중국의 명문대 입학입니다.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게 예습과 복습, 그리고 좋은 정보입니다. 예습과 복습은 중국에서 ‘作業’라는 한마디로 끝납니다. 즉 숙제인거죠. 그만큼 숙제가 엄청납니다. 평일의 경우 밤9-10시까지 해야 하는 양에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확인과 부모의 자체 테스트가 숙제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교직원들이 유리하게 됩니다. 실제로 숙제를 같이한다고 보면 됩니다. 모두가 하는 숙제가 성적을 가름하는 기준일 순 없습니다. 그래서 주말과 방학을 이용한 과외가 등장합니다. 이 과외의 꽃은 현직교사,  그 중에서도 지금 그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의 과외입니다. 그런데 그 교사가 과외를 하는지, 안하는지, 하면 어디서 언제 어떻게 하는지를 파악하는게 중요합니다. 이게 정보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교사와 관계가 있던지 관계있는 사람을 찾아야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당연히 교직원 자녀가 유리합니다.

자녀가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이제부터 부모가 자신의 전공이 아닌 이상 숙제를 봐주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여기서 국영수를 전공하는 부모의 존재가 빛나기 시작합니다. 교직원 자녀의 위대함은 ‘包送’할 학생을 정할 때 빛이 납니다. 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관계의 나라에서 관계 중의 관계는 식구를 제외하면 같은 직장(單位)의 사람입니다.

중국인들은 관계(꽌시)에 의한 특혜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꽌시란 한국인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  몇번 만나 밥먹고 술먹고 하면서 형, 동생하는 하는 꽌시가 아니라 ‘내 식구’라는 범주의 관계입니다. 중국인은 나와 남을 자기사람(自己人)이냐 남(別人)이냐로 나눕니다. 이런 구조와 중국의 교육풍토속에서 교직원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가는 풍토를 만듭니다.

중국의 교육계 친구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뭐가 있나? 돈? 지위? 자식에게 물려줄거라고는 좋은 대학 보내는 것 밖에 없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노력해야 돼. 그래야 노후에 자식먹여 살리는 일을 면할 수 있지.” 자식교육에도 실리적인게 중국인들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보통의 중국사람들 이야기이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최고계층은 자녀들을 중국의 명문대학이 아니라 바로 영미의 명문대학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사이의 ‘강남스타일’노래가사처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거죠.

추신: 최근 중국은 전국공산당대표자회의가 열리는 중입니다. 더우기 올해는 10년에 한번 중국 최고지도부가 교체되는 아주 중요한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경의 경우, 모든 행사나 집회 전면금지, 공사중지, 심지어 택시문도 못 열게 합니다. 그리고 통신의 감청, 일부 사이트 접속차단등이 심합니다. 070인터넷전화쓰는 한국사람들도 전화가 안된다고 하고, google과 gmail역시 차단되서 아주 불편함을 겪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인터넷 환경이 불안정하고 전화연결이 잘 안되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저로 하여금 제가 지금 중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제 딸 에스더의 찰흙작품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작품을 보면서 중국학교에서 공부하느라 여러모로 힘든 것은 아닌지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2-11-11 17.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