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기독교, 한국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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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2호선 합정역 7번 출구로 나와 양화진길로 200m 정도 들어가면 깔끔하게 단장된 외국인 선교사 묘역이 보인다. 여기에 안장된 외국인은 417명이며, 이 중 선교사는 145명이다. 몇 년 전, 이곳에 갔던 적이 있었다. 각각의 묘비를 보면서 나는 이역만리 먼 타향에 와서 살다 간 이분들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다.

『기독교, 한국에 살다』는 이러한 나의 궁금함을 해소해 줄 수 있었다. 성공회출판부에서 출간한 이 책은 한국기독교회협의회에서 ‘근대화에 기여한 기독교’에 초점을 맞추어서 한국기독교 100선을 선정한 한국기독교 역사서이다. 그리고 6개의 큰 주제(교육, 의료, 종교, 여성, 문화, 민족/민중)를 가지고 130년의 역사를 3개의 시기(1919년 이전/1919~1945년/1945년 이후)안에 배치하여 집필하였다.

기독교가 이 땅에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된 점들이 많지만 그 중 한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결핵환자를 위한 모금운동의 일환으로 발행한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을 처음 고안하여 발행한 사람은 미북감리회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었다. 그의 부친 윌리엄 홀은 1894년 청일전쟁 발발했을 때, 평양에서 헌신적으로 환자와 부상자를 돌보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별세하였다. 그의 모친 로제타 홀 역시 의료선교에 헌신하여 맹인을 위한 점자책을 이 땅에 처음 도입하였고, 평양에 맹인 및 농아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와중에 셔우드 홀의 여동생은 어렸을 때 이질로 생명을 잃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친 사후, 가족이 잠시 미국에 귀국했을 때 동행했던 박에스더와 그녀의 남편 박유산 역시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박에스더(김점동)가 미국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의학을 공부하는 동안 그녀의 남편 박유산은 6년 동안 노동을 하며 아내의 공부를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박에스더의 졸업과 귀국을 두 달 남짓 앞둔 1900년 4월 박유산은 급성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남편을 미국에 묻고 홀로 귀국길에 오른 박에스더는 한국최초의 여자의사로서 의료활동을 시작한지 10개월 동안 3천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는 등 10년 남짓 본인의 몸을 돌보지 않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한 나머지 결국 폐결핵으로 1910년 3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셔우드 홀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

나는 이병을 퇴치하는 데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나는 반드시 폐결핵 전문의사가 되어 조선에 돌아올 것과 결핵 요양원을 세우기로 굳게 맹세했다. 이 맹세를 실천하기 위해 4년 전 닥터 하이디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 준 말을 수없이 되새겼다: 높은 이상과 고상한 동기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실천하기 미흡하다.
『닥터 홀의 ‘조선회상’』에서

그 후, 그는 1928년 해주에 한국 최초의 현대식 전문 결핵요양원을 설립, 운영하였다. 세월이 한참 흘러 그들의 생존소식을 안 대한결핵협회는 1984년 91세인 셔우드 홀과 88세인 그의 아내 메리안 홀을 한국에 초청했다. 변변한 양복 한 벌이 없이 검소하게 살고 있던 노 부부 선교사에게 한국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1991년 셔우드 홀은 9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몸은 한줌의 재가 되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묻힌 양화진 묘지에 안장됐다. 그리고 5개월 후, 그의 아내 메리안 홀도 남편의 뒤를 이어 가족과 합장됐다.

코스모스 피는 가을의 청명한 하늘이 오고 있다. 『기독교, 한국에 살다』라는 책을 끼고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가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거기서 우리는 잊혀진 그분들의 삶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마도 과거의 이야기가 오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