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2016.5.29. 강동교회)

연중 9주일

(열왕상 18:20-39 / 갈라 1:1-12 / 루가 7:1-10)

 

감사성찬례에서 ‘하느님 어린양’ 이후에 사제가 빵을 뗀 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여기 계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그러면 회중은 “주여,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에 감당치 못하오니,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다”라고 응답합니다. 영성체 직전 주님의 성체 앞에 온 회중이 고백하는 이 구절의 성서적 근거는 바로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백부장이 예수님께 드린 말씀, “감히 주님을 나가 뵐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낫겠습니다”(루가7,7)입니다. 우리가 감사성찬례에서 종종 습관적으로 응답한 이 구절이 실은 우리 믿음의 가장 훌륭한 모델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훌륭한 믿음을 드러낸 이가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 사람 로마군인 백부장입니다. 라틴어 centurio라고 하는 백부장(百夫長)은 약 100명 남짓으로 군인을 통솔하는 지휘관입니다. 그는 로마인이었고, 그래서 야훼 하느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방인 군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복음에서 유대 원로들이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 말한 대목에서 그에 대한 몇 가지 성품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백인대장은 도와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까지 지어주었습니다.”(루가 7:4-5) 다시 말해 백인대장은 식민지 백성 유다인들을 무시하거나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고, 유다인들을 존중한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군인으로서 갖춰야 할 명령과 규율에 충실한 진정한 군인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주님께 드린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저도 남의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에도 부하들이 있어서 제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또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루가 7:8)

이와 같이 훌륭한 성품과 올바른 군인정신을 가진 백부장이지만 그는 야훼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에 불과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착하고 성실한 직장인이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이방인 백부장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칭찬하셨다는 것입니다: “잘 들어두어라. 나는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본 일이 없다.”(루가 7:9) 예수께서 말씀하신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이방인 백부대장은 비록 유대인에게 호의적이기는 했지만 야훼신앙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칭찬하신 그 믿음이란 단지 인간적인 신뢰차원의 믿음인가요?

그리스도교 철학과 전통신학 이론에는 다음과 유명한 명제가 있습니다: “Gratia supponit naturam. (은총은 자연을 전제(보충)한다)” 이것이 은총과 본성, 은총과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입장입니다. 그 뜻은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오기 위해서는 그 은총을 받을 우리의 본성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럴 때만이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의 인간본성을 풍요롭게 하고 완성시켜 준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백부장의 믿음은 하느님 은총을 온전히 받아들일 충분한 토양을 갖춘 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그의 훌륭한 본성 위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으로 참으로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의 종이 예수님의 ‘한 말씀’으로 온전히 치유된 것입니다.

백부장 이야기는 우리에게 믿음의 인간적 차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많은 유다인들이 매 주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토론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는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본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이방인 백부장의 인품을 칭찬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의 성품에 문제가 있다면 오늘 우리가 들은 백부장의 종과 같은 믿음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빗물처럼 내려오는 하느님의 은총도 우리본성이라는 그릇이 망가져 있다면 담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최근 아동살해, 여성살해와 같은 증오범죄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망가진 인격, 삐뚤어진 인격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서 힘없고 무고한 사람들이 연일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자신의 딸을 살해한 목사부부, 강남의 어느 화장실에서 생면부지 여성을 살해한 신학교 중퇴생을 보면서 “신앙이란 뭔가”, “믿음이란 뭔가”라는 질문을 해 봅니다. 흔히들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는다’고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 믿고 더 나아가 목회자가 되겠다고 또는 목회자가 된 그 사람들이 저지른 반 인륜적인 악행은 뭔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하느님의 구원을 말하기에 앞서 자신의 성품과 인격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이 더 우선되고 중요한 것이 아닌가 질문해 봅니다.

이방인 사람 백부장의 믿음은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 당시 야훼 하느님을 믿었던 유다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주님은 오늘날도 지금 이 예배에 참석하고 우리의 믿음보다도 비록 주님에 대한 신앙지식이 부족하거나 모르는 사람 중에서 선량한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 더 훌륭한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하고 계시진 않을까요?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오늘도 감사성찬례에서 “주여,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에 감당치 못하오니,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다”라고 응답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한 말씀’! 그 옛날 백부장의 종을 낫게 하신 그 ‘한 말씀’,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의 영혼을 낫게 해 줄 예수님의 그 ‘한 말씀’을 정말 간절히 간구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내 영혼의 상태가 어떤지, 내 성품, 내 마음자리가 어떤지 먼저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성품이 백부장과 같다면 주님의 한 말씀은 당장에 이루어 질 것이지만, 우리의 성품이 유다인들과 같다면 그 한 말씀은 그저 공기 중에 울리는 소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종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주님께 간절히 간구한 백부장의 심정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영혼의 치유를 위해서 주님께 간구합시다. 다시는 힘없고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는 일이 없는 안전한 사회가 이루어지도록 간구합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황폐화된 사람들이 치유되고, 그들의 비뚤어진 마음이 바로 잡혀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 힘을 모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를 치유해 주시는 주님의 ‘한 말씀’을 간절히 바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더하기’와 ‘빼기’(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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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이란 블로그 이름을 보면서 10년 전 남경대학 유학시절 들었던 은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당신은 중화민족을 뭐라고 생각하나요?”

“…… .”

“나는 중화민족을 커피에 같다고 생각합니다. 커피에 설탕이나 프림, 또는 그밖에 다른 성분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든 커피 원래 성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커피가 아닌가요? 중화민족이란 개념은 그것이 혈연이 되었든, 문화가 되었든 중국적 요소와 조금이라도 결합되는 순간 ‘우리가족’이 되는 겁니다.”

 

은사님의 말씀은 한국인인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사실, 생물학적 견지에서 볼 때, 남방의 광동사람보다 북방의 산동사람이 한국사람과 더 가깝다. 피부도 까무잡잡한 광동사람은 오히려 동남아사람과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핏줄의 순수성을 따지는 한국인의 관념으론 그들은 서로 다른 남남에 불과하다. 더욱이 언어까지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 그들은 모두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묶었을까? 은사님의 말씀에서 나는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아홉까지 다른 것보다 한가지 같은 것을 중시하는 이른바 ‘커피’정신이 아닐까?

논어에 “대인은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화이부동, 동이불화’외에 중국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공통점을 찾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차이점을 찾는다(智者求同,愚者求异)”는 말도 있다. 또한 “같은 점을 추구하고 다른 점은 인정한다(求存同异)”라는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의 대원칙이자 외교지침도 있다.

‘和와 同’, ‘다름과 같음’에 대한 중국인들의 이러한 말들 속에 그들의 태도, 생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더하기(+)’와 같다고 표현하고 싶다. 유구한 역사를 통해 수많은 민족들의 변천을 겪으면서 그들은 낯선 타자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찾으면서 생존해야 했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갔던 것이 아닐까? 도덕경에서 언급하는 물의 속성처럼, 거친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는 풀처럼 말이다.

물론 노신의 ‘아Q장전’에서 묘사된 중국인들의 아전인수식 자기 정당화처럼 부정적인 측면도 없진 않지만 내가 보기엔 오늘날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과 엄청난 사람, 그리고 문화적 역량은 이처럼 무한증식과도 같은 ‘더하기’에서 오는 것 같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인들의 태도와 생각은 ‘빼기(-)’처럼 순수함, 완벽함, 동일함을 추구하는 것 같다. 한국의 식당가를 거닐다 보면, 여기저기 ‘원조’, ‘진짜 원조’, ‘오리지널 원조’라는 수식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순수 혈통인 ‘단일민족’을 유난히 강조한다. 이러한 동일함에 대한 유별난 집착은 수많은 외침에 맞서서 오늘날까지 우리를 지탱해 온 힘이었지만 동시에 우리자신을 점점 작아지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과 북이 갈라지고, 지역과 지역이 갈라지고, 이념과 이념이 갈라지고, 심지어 한 집단 내에서도 편을 갈라서 정통성을 찾으려고 한다.

성공회가 다양한 것을 존중하는 특징을 갖고 있고 이러한 좋은 점을 ‘화이부동’이라는 말을 빌어서 표현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그렇지만 ‘화이부동’이란 의미가 만일 “나는 당신들과 어울리기는 할거야. 그렇지만 같은 존재는 아니야”라는 짐짓 고고한 태도를 갖거나, 혹은 ‘화이부동’이란 말이 하나의 이념적 모토가 되어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배척하는 경직된 고정관념 또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수많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우리의 노력을 ‘和’내지 ‘더하기’의 과정 혹은 우리의 표현으로 한다면 ‘선교’라고 한다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同’내지 ‘빼기’의 과정 또는 우리의 언어로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과 일치를 추구하는 ‘영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두가지 측면을 동시에 추구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느님과 동화되어 세상의 다양함을 포용하고 화합하는 ‘화이부동’! 이러한 성공회의 영성과 선교를 그려본다.

ECO-WALL专家来我司培训墙面绿化技术(2012年)

4月1日,韩国ECO-WALL公司专家李京来教授来我司进行墙面绿化技术培训,集团领导谢国昂、设计公司负责人杨宗武、钢结构公司和素道国际相关人员参加了培训课程。

首先,李教授简单介绍了韩国ECO-WALL公司概况和企业经营理念。随后,给大家详细解说了ECO-WALL公司的最新技术——植生版粘贴墙体绿化技术的技术原理和产品优势,并展示了植生版粘贴墙体绿化产品样品。最后,李教授解答了我司与会人员提出的各种问题。

植生版粘贴墙体绿化技术是应用专利产品植生板作为基质材料,设置自动喷灌系统,粘贴在墙体上的墙体绿化技术。我司与韩国ECO-WALL公司已于日前在北京签订了长期合作协议,此技术将成为我司年度重点项目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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集团高层前往韩国考察并于近日与韩国Eco—wall公司成功签订合作协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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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年2月17日,王增涛董事长率集团高层领导前往韩国首尔对韩国Eco-wall公司及POSCO ICT进行了为期三天的考察。此次考察旨在商讨中科建集团与两家公司就Wall-Art等绿色建筑和智能建筑技术的合资合作。

此后经过近一周的磋商洽谈,中科建集团与韩国Eco-wall公司于3月3日在北京中科建集团总部签订了长期合作协议。

Eco—wall是韩国一家专业从事绿墙高新技术研发和施工技术的公司,其技术目前在国际上属于领先地位,且尚未在中国市场推广。此次Eco—wall公司与中科建集团的合作,必将在未来为双方在中国乃至国际的绿色建筑业务拓展方面开启一页新的篇章。

 

푸른나래 공부방 이야기(2006.7. 연세대 자원봉사단 홈피에 올린 글)

20070919143202.208.0[1]한용외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이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한 푸른나래 공부방에서 공부방 아동들과 함께 티셔츠 만들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2007.9.19. 이데일리 뉴스에서)

공부방 이야기 들려 드릴께요.

저희 공부방은 김포공항 옆(양천구 신월3동)에 있습니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는 비행기가 저리 낮게 나는 것을 본적이 없어 무척 신기했습니다. 물론 그때 까지만 해도 시끄럽다는 생각은 못했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모습이 너무 일상이 된 것 같았습니다. 신월동 지역은 서울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고 모두가 말씀하시더군요. 실제로 아이들이 사는 동네를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옷차림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계절이 바뀌기 전에는 자주 갈아입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교회 어머님들께 입던 옷을 여러 차례 구해다 아이들과 나누어 입기도 했습니다. 누가 누군지는 금방 알 수 있지요. 거의 옷에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지저분한 옷을 오래도록 입고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 손톱을 깎아 주어야 하고 이 닦는 훈련, 세수하고 손 닦는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과가 되기도 합니다. 부모님들이 이혼을 하거나 경제적 어려움들로 아이들이 보호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업은 학업대로 방치되어 있고 아이들 위생과 건강 또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충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무척 많습니다. 영양의 섭취가 불안정 하다 보니 빈혈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또한 집안 환경의 영향으로 천식 등 기관지가 약한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무척이나 밝고 활기차고 명랑하다는 것이고 늘 웃음을 잃지 않고 비록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밝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공부방에 아이들은 30여명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이 지역에서 저희 같은 공부방을 올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무척 많습니다. 공부방이 더 많아지면 어느 정도 아이들에게도 보탬이 되겠지요.

자원봉사를 해주는 교사들 그리고 작은 정성으로 꾸준히 후원해 주시는 교우 분들이 계십니다. 앞으로도 그런 분들의 도움이 절실한 형편입니다. 잘 꾸려가 보겠습니다.

공부방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아이들이 사랑을 받고 그리고 그 사랑을 언젠가 필요한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마음을 배운다면 우리 공부방이 존재하는 큰 보람 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회 신월동 공부방
이경래 (베드로)부제 올립니다.

http://www2.yonsei.ac.kr/love/life/help_read.asp?idx=2&page=18&SeqNo=61

‘열린’ 주교좌 성당 감상기(2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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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변화는 우리의 느낌과 사고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많은 상상력을 불어넣는 것 같다. 중국에서 대성당 앞 국세청 별관 건물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일까 직접 눈으로 보면서 느끼고 싶었다. 다행히 올 8월 한국에 잠시 올 기회가 돼서 시간을 내어 그 현장을 직접 맛 볼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시청 청사에 바라 본 대성당은 참으로 고혹적이었다. 주변에 현대식 빌딩, 심지어 새로 지은 서울시청 신청사의 너무나 ‘현대적’인 건물과 달리, 주황색 기와를 얹은 로마네스크 건물의 이국적이고 종교적 경건함이 뚜렷이 대비되었다 더욱이 그 옆에 덕수궁과 병렬적으로 배치되면서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 지극히 현대적인 주변풍경 속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지며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 느낌이었다.

지하보도를 건너서 국세청 별관 터를 지나 성당 마당으로 들어섰다. 별관의 기둥들이 듬성듬성 있고 마당에는 오래된 나무와 카페 그레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마당에 들어서서 시선을 시청 쪽을 향해 봤다. 예전에는 건물 담에 가려서 왠지 모르게 답답했는데, 이제는 탁 트인 시야 속으로 ‘세속’의 건물 숲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사람과 차는 쉴새 없이 지나가고, 높은 건물은 마치 “우리와 모습이 다르네. 너는 누구니? 그 동안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니?”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또한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잠시 고개를 돌리고 “와! 이건 뭐지?” 하는 듯이 건물을 쳐다봤다.

순간 난 대성당 건물이 되어 주변에 있는 빌딩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말이야……” 그러면서 내 입이 되어줄 사람들 또는 그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건물에서 나오는 신도들은 모임이 끝나고 서로 인사를 하면서 헤어지고 있었다. 성당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빌딩들로 빼곡한 ‘건물관중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뭔가를 찾을 수 없었다.

성당 마당 한 가운데서 이러한 상상을 하다가 문득 자그마한 건물 카페 그레이스에 눈길이 갖다. “이 건물을 대성당의 ‘입’이 되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주변 빌딩에 전광판에서 뉴스나 광고를 하는 것처럼 카페 그레이스 건물 위에 자그마한 전광판을 설치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를 마련하면 어떨까? 이 창구를 통해서 대성당의 예배, 우리 교단의 여러 선교적 활동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성공회의 풍요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날 우리는 ICT시대를 살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인터넷과 모바일로 온 세계가 거미줄 같이 연결되어 있고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다. 또한 오프라인에서는 미디어 파사트와 같은 기술을 통해 건물자체가 소통의 창구가 되고 있다. 대성당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보면 덕수궁은 수문장 교대식과 같은 전통적인 행사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으며, 주변의 언론사 빌딩은 전광판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라는 극과 극의 소통수단 한 가운데서 우리 대성당 그리고 더 넓게는 보면 우리교단은 대성당이 주는 전통성과 카페 그레이스 건물 위에 있는 자그마한 전광판이라는 현대성 모두를 담아냄으로써 우리와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선교’를 선포하였으면 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과 열리게 해 주신 이러한 은총의 때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는 자그마한 첫발을 내딛길 희망해 본다.

A Brief Report on the outcome of an introductory visit for Rev Peter Lee to Guizhou Bible School from 2 to 6 July 2009

Purpose of visit:

  1. To introduce Peter Lee to the Staff and leaders of Guizhou Bible School (GBS) and to explore possibility of future assignments and involvement in the school.
  2. To have a feel of Guiyang and Guizhou as to its general environment and living condition this being Peter’s first visit.
  3. To assess and ascertain practical steps forward in pursuit of an expressed interest and desire to work with the Guizhou Bible School.

Itinerary:

July 2 – Peter arrived from Seoul via Beijing; Chye Ann from Singapore.  Met at the airport by senior staff members of the Bible School including Pastors Zhou and Ning, the acting Principal and acting Vice-Principal respectively.  Had supper and then checked in to hotel.

July 3 – Met with the students in the morning.  Chye Ann gave a lecture in Chinese on ‘God’s Calling’ based on the story of Moses and the burning bush in Exodus 3.  After lunch, met with the entire teaching team for an informal session of sharing and dialogue pertaining to Peter’s interest and desire to come to Guizhou to work with the church and Bible School.  In the evening, there was a Praise and Worship where Chye Ann gave another sermon.

July 4 – Visited one of Guizhou’s scenic spots to ‘reflect and unwind’.  In the afternoon, visited Dr Que Hai Yang, a Korean national, at the Guizhou University to seek his advice on the possible way forward.  Dr Que has been in Guiyang for 7 years now.  He is professor of Humanities Studies at the University and also directs the Korean Centre.  He is a believer but maintains a clear distinction between his professional and religious commitments, and rightly so.  After the meeting, Chye Ann left Guiyang in the evening.

Peter was to remain in Guiyang until morning of 6th July.  His report will obviously cover the other necessary details.

The business discussions:

Chye Ann introduced Peter formally to the GBS Staff and explained his role as an independent consultant as he is now not in a position to represent CMS or CTBI as he had done so for the last 8 years.  More importantly, this is an informal visit and he is here on his personal capacity as a friend of GBS so as to assist Peter Lee with his request and needs.

In the meeting with the Staff, Peter presented a one-page summary of his vision, aspiration, hope and proposed action plan regarding his interest and desire to come to GBS to serve on the teaching team.  His impressive CV and copies of both his Masters and Doctoral dissertations were tabled.  His work in the ‘thoughts and theology of Bishop Ding’ is of particular interest and this should single him out from ‘the Koreans’, who do not usually work through official channels. After sharing and explaining his position and intention, a very useful and open discussion ensued and these were the significant points raised:

  • GBS is ‘over the moon’ to have been introduced to a person as well qualified as Dr Lee. They have been hoping for at least a couple of academics with Masters degree to help beef up the teaching team but have never dreamt of being given a doctoral candidate! Elation and joy were expressed.
  • However, realism sets in as some of the immediate obstacles were raised. Firstly, GBS itself is still unrecognised and unaccredited by the relevant Chinese authorities. Ironically, one of the major obstacles to that attainment is the lack of a suitably qualified teaching staff, which Peter’s possible entry would have helped. Secondly, at the moment, foreign teachers are not allowed in especially ‘religious institutions’ such as GBS, even if the status of GBS in the eyes of the authorities is not a question… so we have here already a ‘double jeopardy’. Over and above that, the Chinese are generally wary and suspicious of Koreans! (I will not get into too many details so as to keep this report relatively sanitised).
  • However, there is genuine welcome to have Peter on board while recognising the seemingly insurmountable obstacles in making this work given the situation. Realistically, all expressed relative pessimism and explored other ways forward.
  • The role of CCC and SARA was also discussed and GBS accedes that they are not in a position to influence decisions at that level and that CMS and CTBI should continue the negotiations at the level.
  • The over-riding concern was to ascertain how Peter might have a legal and legitimate reason to come to Guizhou long term while relating to GBS in a responsible and cautious way. Some of these ideas include Peter doing language studies at Guiyang University, apply for some sort of teaching position at the University based on his own academic merits, or start a company in social entrepreneurship (with Peter suggesting that he needs to do his own funding as well as this might be one way out).
  • The meeting with Dr Que of Guiyang University also confirmed and augmented the ideas and proposals put forward by the GBS staff. These include:
  • Peter enrolling as a language student for 6 to 12 months with a view of building relationships with government authorities and GBS.
  • Through CTBI, Peter should be formally introduced to the CCC and SARA structures so as to eventually gain acceptance. His theses should be scrutinised as appropriate. Once he is accepted at that level, then would there be a chance for Guizhou to make an application for formal involvement. There is no chance whatsoever at this stage if that is not done.
  • Meanwhile, (through Dr Que’s suggestion), GBS could begin to invite academics from the Guiyang University on a monthly basis to lecture at GBS. Government officials should be invited to attend those lectures. This exercise in itself would raise the level of academic competence of GBS. If and when that is done, and if Peter is already in Guiyang University either as a language student or better still on the visiting faculty, he could also be one of the regularly featured guest lecturers from the University speaking at GBS. The authorities would no doubt eventually notice his exposure and presence and it is hoped through time, he will be welcomed as a friend of GBS (and if I may add as I was by the authorities in the course of building the building despite official setbacks!).
  • Seriously consider a BAM enterprise. (But this requires another different analysis altogether and for the time does not come within the remit of this visit).

Peter is keen and ready to come to China as soon as possible.  He and his family must decide, and hopefully with the support of his Bishop and church, on the timing.

Given the complexities and uncertainties at so many levels, this sort of work could only be an act of faith.  I hope CMS would offer Peter the necessary encouragement to fulfil his mission vision and commitment.

Peter will no doubt be furnishing a report on the visit and this report from me is meant only as a discussion started and an adjunct if anything, to what Peter would be submitting in greater detail and clarity.

 

Chye Ann Soh

5 July 2009.

 

해외선교특위 중국분과 첫모임에 대한 보고(2009.9.17)

 

일시: 2009년 9월 17일

장소: 주교관 회의실

참석자: 김근상 주교, 김영일 신부, 나성권 신부, 김현호 신부, 이경래 신부, 김운권, 윤지현, 임삼철, 정진현

불참자: 김명호(중국출장), 이재현(중국출장), 이인재(홍콩거주)

 

  1. 회의

개회기도: 김영일 신부

격려말씀: 김근상 주교

보고: 이경래 신부

– 중국선교 준비 진행경과 보고

– 중국선교 프로젝트(중국교회 목회자 양성 지원사업) 설명

토론

 

 

  1. 식사

장소: 달개비

논의내용

-향후 일정 소개: 해외선교 국제대회

-후원에 대하여:

  • 아시아 선교를 위한 기도회(28일 저녁)를 적극 활용하자
  • 매달 200만원을 정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10만원씩 3년간 후원할 수 있는 분들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소액후원을 하는 방법을 추진하자.
  • 우선 각 교회의 관할사제와 회장단에게 이 사업의 취지를 잘 설명해서 공감대를 확산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 영국과의 협상 때 프리젠테이션을 잘 준비해야 한다.
  • 중국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발굴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 이 사업외에도 중국과 관련된 다른 선교활동(예: 정데레사의 탈북 및 의료선교)도 검토, 조정하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 분과에 역량있으신 분들을 더 영입하면 좋겠다.

 

중국선교 준비 진행경과 보고(2009년 9월 17일)

대한성공회 해외선교 특별위원회 중국분과 첫 모임

 

배경

  1. 먼 배경

– 2000년 하반기: 통일선교를 위한 방안으로 중국과 중국교회에 관심갖기 시작

– 2001년~2002년 상반기: 중국남경에서 중국어 공부 / 논문지도교수인 양권석 신부의 배려로 중국현지에서 석사논문작업 수행(논문제목: 정광훈 주교의 신학사상 연구)

– 2002년 9월~2006년 1월: 정철범 주교의 지원(예수사랑 선교회의 선교기금을 본인의 학자금에 지원해 주심)으로 남경대 역사학과 박사학위 취득(논문제목: 손중산과 여운형 비교연구-제1차국공합작과 첫 번째 통일운동 중심으로)

– 2006년 여름: CMS 서울사무소에서 당시 아시아 책임자인 Chyeann Soh(苏才安)신부와 첫 면담

– 2006년 가을: 캔터베리 대주교 중국교회 공식방문(중국교회와 영국교회간의 협력사업 논의, 그 중 신학생 양성을 위해 남경신학교에 교수요원 파견 요청받음)

– 2007년 10월: CMS로부터 남경신학교로 파송제안 받음 / 박경조 주교께 보고 후, 추진

– 2007년 11월: 세계성공회대회(TOPIK)때 영국교회측(CMS, USPG)과 서울교구측(박경조 주교)에서 본인을 남경신학교로 파견하기로 구두합의

– 2008년 2월: 중국기독교협의회(CCC) 전국회의(지도자 교체)와 CMS 아시아 책임자 교체로 남경신학교 파송건이 진척되지 못함

– 2008년 4월: CMS로부터 수정된 제안(남경신학교에 가기 전에 King’s College, London에 있는 중국기독교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하는 안)이 들어옴 / 박경조 주교께 보고후, 신청서 제출

– 2008년 11월: 박경조 주교께서 홍콩관구장 방한시 본인을 홍콩에서 일할 수 있도록 추진하심(홍콩 관구장 방한이 이루어지지 못한 관계로 어려움에 봉착)

– 2009년 4월: 람베스로부터 남경신학교 파송이 안되었다는 통보받음(중국교회에서 한국 기독교 성직자는 수용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함)

 

  1. 가까운 배경

– 2009년 4월: CMS로부터 귀주성경학교 지원프로그램 제안받음 / 교구에 보고

– 2009년 6월: CTBI(영국과 아일랜드에 있는 에큐메니컬 선교지원기구) China Desk 책임자 중국방문시, CCC 신학교육위원회장인 陈逸鲁목사와 본인의 귀주성경학교 파송문제 협의

– 2009년 7월2일~6일: 귀주성경학교측과 협의하기 위해 중국출장(前CMS 아시아 책임자인苏才安신부와 동행)

– 2009년 8월20일 : 제2차 대한성공회 해외선교특별위원회에서 중국분과 설립 결의

– 2009년 9월17일 : 해외선교 특위 중국분과 첫 모임

귀주성 기독교 및 귀주성경학교 상황

– CCC 산하에 18개의 공인된 신학교와 5개의 성경학교가 있음

– 이들 교육기관은 CCC 산하의 신학교육위원회(위원장: 陈逸鲁목사)의 감독을 받고있음

– 그 중 귀주성경학교(정식명칭: 귀주기독교신학코스)는 귀주성에 있는 유일한 신학교육기관임.

– 귀주성 기독교 인구: 공식적으로 약230,000명 추정 / 귀주성 크기: 한반도의 2/3

※ 중국기독교인구: 약1억명 추정

– 귀주성경학교 약사:

1993년 개교

2006년 CTBI후원으로 새 건물 완공(CMS에서 건축비의 50%이상 지원)

– 귀주성경학교 현황:

학생수: 약120명(학생의 70%가 소수민족)

교사수: 12명(5명만 학사학위 있음)

과정: 정규과정(3년-사목자 과정), 단기과정(1년-평신도 지도자 과정)

교육경비(학생1인당): 약 215달러(1,600RMB)

 

역할 및 전망

  1. 의의 및 역할

– 중국교회와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첫 번째 선교협력

– 귀주성경학교 업그레이드(학교는 bible school에서 seminary로 학교지위가 올라가길 열망하고 있음): faculty 역량강화, 신학 및 영성교육에 이바지

  1. 전망

– 인재양성을 통한 귀주성 및 중국전역의 신학교육과 CCC쪽과의 연결망 구축

– 향후 한국성공회와 성공회대학 신학과와 교류를 통한 동아시아 신학형성에 기여

(예: 신학교 협력 프로그램, 사회선교 교류 프로그램, 성물이나 기타 신학서적 공동제작 및 판매 프로그램 등)

–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한 교회협력 모델에 대한 신학적, 선교적 경험축적

 

현재 어려운 점

– CCC 직할인 남경신학교를 제외하고 지방 신학교육기관으로 처음있는 외국인 교사 수용이라 CCC에서 신중하게 반응

– 한국 기독교가 중국에서 하고 있는 독선적인 선교방식으로 CCC가 한국 기독교에 대하여 부정적 선입견을 갖고 있음

– 재정적 지원체계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