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성경학교 방문기(2009년 7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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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2일부터 6일까지 저는 중국 귀주성 귀양시에 있는 귀주성경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방문에는 前CMS 아시아 책임자였던 苏才安신부가 동행해 주었습니다.

7월2일(목): 서울에서 귀양으로 바로가는 직항편이 없는 관계로 북경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오후7시(북경시간)에 귀양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귀양공항은 인천이나 북경수도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골의 고속버스 터미널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공항에는 귀주성경학교에서 부교장인 주목사를 비롯하여 4명의 선생이 마중나왔습니다. 그런 다음 싱가폴에서 오는 소 신부를 영접하기 위해 약 1시간가량 기다렸습니다. 소 신부는 귀주성경학교 건물을 짓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이들과 약7년가량 관계를 맺어서 그런지 격의없는 친한 관계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귀주성경학교는 3일에 방학예정이었는데 우리를 맞이하기 위하여 방학과 졸업식을 6일로 연기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한시간 가량 차로 이동하여 이들이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7월3일(금): 아침에 학교에서 2명의 목사가 와서 저와 소신부를 태우고 성경학교로 갔습니다. 학교는 귀양시 북쪽에 있는데 주변에 논과 공장이 있고 약간 떨어져서는 귀양사범대학 제2캠퍼스가 있습니다. 길에는 차와 물소와 우마차가 동시에 다닐 정도로 한적한 곳입니다. 그렇지만 차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마구 달리는 바람에 긴장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학교건물은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는 관계로 멀리서도 금방 보였습니다. 고딕건물 비슷한 양식의 은회색 벽돌로 쌓아 올린 건물이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해 4층 강당으로 올라가니 10명의 선생과 약120명의 학생들이 모두 모여서 열렬히 환영해 주었습니다. 곧 이어서 선생의 소개로 제가 간단하게 자기소개 겸 환영인사를 하였고 소 신부의 특강이 이어졌습니다. 출애굽기3장 모세의 소명에 대한 강의였는데 선생을 비롯하여 학생들이 모두들 열심히 적어가며 강의를 들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 저는 몇몇 선생의 안내로 학교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1층에는 약100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은 1층은 약700명 좌석이 있고, 2층은 약300명 좌석이 있는데 2층은 1층의 반정도이고 1층 연단을 향해 트여 있습니다. 2층과 3층은 교실, 컴퓨터실(인터넷은 안됨), 교무실이 있고, 4층은 강당, 5층은 도서관(약5000권 정도의 아주 빈약한 장서량)이 있고 각 층의 양끝은 남학생 숙소(1방에 3~4명 거주)가 있습니다. 학교에는 위에서 언급한 본관외에 선생숙소(아래층은 여학생 숙소)건물과 식당건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농구장이 있습니다. 선생들은 학교건물을 안내하며 매우 뿌듯해 하였습니다. 1993년에 시작한 귀주성경학교는 원래 지금보다 더 먼 시골에 있었는데 건물이 낡아서 비가 새고 책상과 걸상도 망가진 나무의자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기도하고 공부하였는데 2000년부터 새로운 학교건물을 짓기로 하고 귀주성을 비롯해 여러 곳에 모금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CMS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기독교의 커다란 도움으로 2006년 귀주근처로 이사하여 새로운 건물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전에는 귀주성 기독교협의회에서도 인가받지 못한 무허가학교였지만 이제는 귀주성 기독교협의회에 있는 유일한 성직자 양성기관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중앙에 있는 기독교협의회로부터 정식학교로 인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명의 석사학위를 가진 선생이 필요한데, 이렇게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왔으니 귀주성경학교는 중앙에서 인가받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 더 이상 성경학교(bible school)가 아니라 신학교(seminary)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에 부풀어 말하였습니다.

오후에는 4층 교무실에서 학교의 모든 선생들과 비공개 회의를 가졌습니다. 저는 ‘귀주성경학교발전방안’이라는 한 장짜리 유인물과 석사논문인 ‘정광훈의 신학사상’-초록은 중문으로 써있습니다-과 중국에서 책으로 출간된 저의 박사논문인 ‘손중산과 여운영 비교연구’를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관심을 가지면서 즐거워했고 특별히 석사논문 중문초록 부분을 읽고는 일반 중국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기독교도와는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아래에는 그들과 회의에서 나온 몇가지 내용입니다:

 

– 귀주성경학교가 최근에 당면한 가장 큰 숙제는 기독교협의회 중앙과 종교국으로부터 정식학교로 인준을 받는 것입니다. 인준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도서관 장서보유량이 최소 2만권 이상이 되어야 하고, 둘째는 석사학위 이상 선생이 최소 2명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박사학위 선생이 온다면 ‘성경학교’-3년과정으로 학사학위 없음-로 인준받는 것을 넘어 ‘신학교’-4년과정으로 학사학위를 줄 수 있음-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귀주성경학교에 오면 자신들의 소원 그 이상 이루어지고 적어도 중국 남서부 일대의 성경학교는 물론이고 신학교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뻐하였습니다.

– 그런데 문제는 중국정부의 법령에 있습니다. 외지인, 특히 외국인 교원을 초빙할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중국기독교협의회 중앙과 종교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귀주성경학교는 지금 중앙으로부터 미인가상태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그렇지만 그들은 제가 이곳에 와서 귀주성경학교가 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무형의 도움을 주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선 귀주대학이나 귀주사범대학에 와서 중국지방역사와 언어를 더 연구하면서 귀주성 종교국과 통일전선부 간부, 귀주 기독교협의회 관계자와 관계를 맺어나가고 저의 박사학위 책을 그들에게 주고 또 석사학위 논문을 이곳에서 출판해서 알리면서 자연스럽게 귀주의 종교관계자들로부터 호감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 동시에 중국의 특성상, 중앙으로부터 제가 합법적으로 추천을 받기 위하여 한국 성공회나 성공회대학 그리고 영국성공회가 협의를 계속 해나가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희망적인 것은 한국의 다른 기독교와는 달리, 한국성공회는 중국에서 아직 중국정부나 중국기독교의 정책에 반하는 활동을 한 적이 없고, 성공회의 국가교회 모델이 중국의 종교정서와 부합하는 면이 있으며, 특별히 중국 기독교 중앙의 정광훈 주교를 비롯한 성공회 배경을 가진 성직자들이 있기 때문에 잘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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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후, 찬양예배를 했습니다. 이곳 학생의 70%는 소수민족이고 이들은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찬양예배를 좋아합니다. 이 시간에 선생들은 졸업식과 방학을 준비하기 위한 회의를 하러 내려가서 소신부의 간단한 설교와 학생들의 자발적인 진행으로 찬양이 이어졌습니다. 예배 마지막에는 몇몇 학생들이 소수민족 복장을 입고 나와서 함께 춤을 추었고 저와 소 신부도 이들과 함께 춤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찬양예배가 끝나갈 무렵, 어떤 신학생이 저에게 와서 자기가 갖고 있는 성경책을 보여주었는데, 중문-한글이 병행된 성경이었습니다. 이 학생은 한국에 관심이 많다며 한글로 성경을 읽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한류의 열기를 이곳 외딴 성경학교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한국사람이 자기들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이 연신 믿기지 않는 듯 호기심과 호의어린 눈길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숙소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과 더 이상 시간을 계속 갖지못하였습니다.

 

7월4일(토): 오전에 성경학교 부교장인 주목사와 저와 소신부는 귀주근교에 있는 폭포에 바람쐬러 갔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밤새 잠을 잘 못 자서 머리가 무거웠는데 맑은 공기와 시원한 폭포를 보고 들으니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는 귀주시 남서쪽 근교에 위치한 귀주대학을 방문하였습니다. 귀주대학에 조선족출신 최해양 교수가 있는데, 그는 그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고, 기독교신자입니다. 연변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한국에서 종교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중국으로 귀국 후, 귀주성 양회(중국기독교 협의회와 중국삼자애국운동협회를 함께 부르는 명칭)의 부주석으로 내정되어 있었지만 한국목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어 많은 곤혹을 치루었고 그 와중에 운남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박사를 받고 귀주대학에서 교편을 잡게 된 사람입니다. 내년에 정교수가 된다고 합니다.

귀주대학에 간 우리는 최교수로부터 많은 귀중한 경험과 조언을 들었습니다. 최교수는 이전에 한국 목사들과 중국선교와 관련된 활동을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중국과 이곳 상황을 잘 말해 주었습니다. 다음은 그가 말한 내용입니다:

 

– 현재 중국에서 한국 기독교의 위상은 나날이 쇠락해 가고 있다. 그 전에는 중국의 경제적으로 약했기 때문에 한국기독교의 자금력이 효과를 발휘했지만, 지금은 중국정부는 물론이려니와 중국기독교 역시 경제적으로 커져서 더 이상 한국 기독교의 물질적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이다.

– 그런 의미에서 이경래신부가 중국남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매우 잘 한거라고 본다. 왜냐하면 귀주에서 봤을 때, 남경대학의 위상은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경대학에서 일반 역사학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의심을 받지 않고 학술활동을 할 수 있는 명분이 있다. 동시에 중국에서 공부했을 때 알은 인맥을 통해 성경학교를 도와주면 대단한 효과가 있다. 예컨대, 귀주성경학교 명의로 남경대학이나 기타 다른 대학의 교수들을 초청해서 다양한 인문학 학술세미나를 열 때, 이곳 종교관련 정부나 당 간부들, 귀주기독교협의회 관계자들을 부른다면 귀주성경학교의 위상이 올라가서 이 학교가 정식인가를 받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 만일 이 신부가 귀주에 온다면, 우선은 방문학자 신분으로 와서 조용히 연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세미나를 열 때, 음으로 지원해 주고, 책을 출판하는 학술방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면서 당 간부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그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들이 갖고 있던 ‘한국인’(지금까지 중국정부와 중국기독교 정책에 반하는)의 편견이 없어지면서 사상적으로 인간적으로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 성경학교는 교사들이 학사학위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이 신부를 당신네 학교로 맞이하기 위해서 학교 대 학교라는 공식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신부가 갖고 있는 학력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모든 종교교육기관이 통일전선부 산하에 있지만 머지않아 교육부 산하로 옮길 계획이라고 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귀주성경학교는 선생들이 학력이 기준에 못미치기 때문에 폐쇄될 수 있다. 사안이 심각하기 이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지혜를 모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최교수와 면담이 끝난 후, 소 신부는 사천성 청두로 떠났고, 그를 배웅한 다음, 저는 성경학교 근처 허름한 숙소로 옮겼습니다. 내일 아침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숙소는 너무나 허름한 나머지 밤새 모기떼와 싸우느라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주일예배

7월5일(일): 아침에 일어나 근처 노점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성경학교로 갔습니다. 매달 첫째 주일은 성찬예배라고 합니다. 예배에 온 사람은 약700명가량 되었습니다. 1층 좌석이 꽉 찼습니다. 근처 공장과 학교에서 온 교인에다 일부는 멀리서 작고 허름한 미니버스를 타고 온 교우들이었습니다. 주일 설교는 방학을 맞이해서 이곳에 온 남경신학교 본과3년 신학생이 하였습니다. 그는 이곳 성경학교 출신인데 학사학위를 받기 위해 남경신학교에 편입하였다고 합니다. 예배는 성가대의 성가가 있고 성경말씀을 봉독하고 설교가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찬예배에서는 면병조각을 돌린 후, 축성기도와 함께 먹고, 다음으로 포도주가 담긴 작은 잔을 돌리고 축성기도 후, 함께 마시는 순서입니다. 제가 예전에 남경에서 유학했을 때, 근처 교회에서 했던 방식과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선생들과 송별식을 겸한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남경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도 함께 했는데 선생들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거는 것 같았습니다. 제대로 된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라서 그런지 그는 저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였습니다. 특별히 제가 성공회 배경이라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며 남경신학교의 몇몇 선생도 성공회 배경이라고 하면서 성공회에 대하여 주변선생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선생들은 자신들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일이 잘 되어서 꼭 자신들을 도와주러 오길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늘 기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오후에는 그들이 귀주대학 근처로 저를 데려다 주고 숙소를 잡아 주었습니다. 내일 졸업식과 방학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들과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제 오후에 만났던 최 교수와 다시 만나서 귀두성경학교와 관련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숙소나 그밖에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들었습니다.

7월6일(월): 새벽5시에 다마소모양의 작고 낡은 봉고차를 타고 귀주공항에 도착해서 북경수도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저녁7시경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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