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 – 다해 연중16주일

연중 16주일 (루가 10: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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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

 

교우 여러분! 무더운 더위에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복음서에 보면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나자로 이렇게 3남매가 종종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마도 이들 가족을 무척 좋아하셨나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 일행이 마을에 가셨을 때 마르타 집에 머무르셨습니다. 성경에서는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루가 10:38)”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마르타는 아마도 매우 적극적인 여성이자, 솔선수범하는 외향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맏언니인 마르타와 달리, 동생인 마리아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성경에선 마리아가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루가 10:3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에서도 어떤 분들은 마리아 성향이, 어떤 분들은 마르타 성향이 강한 분들이 계십니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단체도 마찬가지라서 마르타처럼 활동적인 봉사를 중시하는 단체도 있고, 마리아처럼 정적인 기도를 중시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모두 교회를 풍요롭게 하는 단체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종종 푸념들이 들리기도 합니다. 특히, 마르타 성향이 높은 단체에 계신 분들이 “우리는 맨날 교회 행사다, 봉사다 하는 일들만 해. 그리고 늘 생색내는 것은 마리아같은 고상한 단체(개인)야. 그래, 우리는 소박데기, 부엌데기 마르타지 뭐!” 특히 이런 불만과 푸념은 주로 어머니회분들이 많이들 하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복음에서도 손님맞이로 동동거리는 마리타가 주님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기만 하는 마리아를 보고 화가 나서 주님께 불평을 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루가 10:40) 마르타의 불만을 어쩌면 아주 자연스런 인간의 반응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루가 10:42)라고 말씀하십니다.

후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근거해서 활동보다 기도가 더 중요하다느니, 물질보다 정신이 더 중요하다느니 하면서 차별을 두곤 합니다. ‘아무리 마르타가 열심히 봉사해 봐야, 주님발치에 앉아있는 마리아보다 못하다’라는 인식이 교회 내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웬지모를 열등감을 심어주고, 심지어는 ‘사제는 마리아 역할, 신자들을 마르타 역할’이라는 위계의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마르타는 마리아 보다 못한 걸까요? 오랫동안 교회에서 잘못 이해하고 왜곡한 이 구절에 대한 올바른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우선, 루가복음에서 이 구절이 자리잡은 앞뒤 문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생전에 행하신 많은 말씀과 행적을 후대에 정리해서 복음서를 편집했는데, 루가 복음사가는 ‘이웃사랑이라는 실천(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과 ‘하느님과의 관계(주의기도)’라는 중간에 이 이야기를 배치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 구절은 지난 주 우리가 들은 대목입니다. “누가 진정한 이웃입니까?”라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다인들이 싫어했던 사마리아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루가 10: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기독교의 황금률 중에서 참된 이웃사랑 실천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 뒷부분은 다음 주 우리가 들을 대목인데 그 유명한 ‘주의기도’에 대한 구절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 특히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한 바람직한 모범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는 이웃사랑 실천과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이어주는 다리역할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다리역할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단순히 마리아의 기도를 높이고, 마르타의 실천을 깎아내리는 뜻으로 말씀하셨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피상적인 이해에 그치는 겁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뜻은 보다 근원적인 데 놓여있습니다.

먼저, 초심(初心)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38절에서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과 일행을 자기 집으로 모십니다. 이것이 마르타의 초심입니다. ‘알아보는 것’ 그리고 ‘맞아들이는 것’, 다시 말해 알아보는 것은 식별한다는 것이요, 그것은 기도로서 배양되는 영적 능력입니다. 그리고 ‘맞아들이는 것’은 신앙의 실천인 것입니다. 마르타의 초심에서 기도와 실천이 이렇게 통합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손님을 맞이하는 일들로 인해 그만 초심이 흔들리게 되고 맙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그녀에게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가 10:41-42)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그녀의 초심을 다시 상기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르타처럼 되기 쉽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품었던 마음이 살면서 여러 가지 주변 환경으로 인해 흔들리고, 어느 때는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하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마르타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초심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많이 봅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어떤 야구선수가 초심을 잃어서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유명한 가수가 스캔들로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으며,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검사가 회사와 야합하여 뒤를 봐주고 큰 액수의 돈을 받아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이 가야할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음으로, 비교의 늪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루가10:42)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오늘날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상대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비교’라는 것에서 완전히 해방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이 비교라는 잣대에 빠져들면 우리의 심성은 피폐해 집니다. 마르타가 초심을 잃자 바로 나타난 현상이 마리아가 눈에 들어왔고, 그녀와 자신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곧 이어 분노가 일면서 그녀의 역할을 빼앗아 버리고 싶어 합니다. 다시 말해 비교가 가져오는 피해는 우리의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고, 그것은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남도 파괴시켜 버립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점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좋은 취지로 모여서 일을 하다보면 종종 분란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그 원인은 많은 부분이 서로 비교하고, 비교당하고 하면서 안좋은 감정이 누적되어 폭발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이처럼 오늘 들은 복음에서 예수님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기도와 실천을 분리해서 어느 한쪽을 높이고, 어느 한쪽을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둘을 통합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 영성전통은 이러한 통합을 ‘활동 속에 관상(contemplatio in actione)’라는 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관상 혹은 기도가 없는 활동은 방향성을 잃을 수 있으며, 활동이 없는 기도는 위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상 혹은 기도란 주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 내 마음 안에 주신 초심을 잃지 않고 잘 개발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기도가 빠진 활동, 초심이 빠진 실천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며칠 전 어는 교육 관료가 자신의 초심을 망각하고 “개, 돼지”운운해서 큰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가 그 자신이 잘나서 아니라 주님이 불러주신 소명을 충실히 수행해야 된다는 자의식을 간직했다면 과연 그런 생각과 말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마르타처럼 우리도 주님을 알아보고 자신의 집으로 영접합시다. 동시에 주변 일로 걱정에 사로잡혀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잃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내 자신이,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교단이 나아가 우리나라가 바쁜 일상에 충실히 살면서도 동시에 그 초심을 잃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Business Plan과 Organization Plan

Business Plan 작성하는 방법에 대하여

 

  • 사업 플랜 작성: 내부용, 외부용
  1. 사업의 동기
  2. 사업의 구분
  1. 1차, 2차, 3차, 4차산업 중 어느 범주에 속하는가?
  2. 외부환경에 대한 driven(외부환경을 대하여 결정되고 내몰리는 것인가?)
  1. 환경분석
  1. 시장성 분석
  2. 경쟁업체 활동분석
  3. Creative 항목에 대한 evaluation
  4. 내적 경영자원의 장,단점
  1. needs에서 wants로 변경시킬 방안은?

→ 수요창출에 대한 가치(value) 창출 – 상품화 계획

  1. 투자계획Ⅰ
  2. → 자기자본(cash or bond) 20% / soft 가치 50% / 외부 자금 가치 관련 30% ☞ 설정하기 위한 상품별 기획
  3. 투자계획Ⅱ
  1. 고정자산 계획
  2. Cost breakdown(실행예산)
  3. 년도별 투자계획(weekly / monthly / yearly)
  1. Feed Back Plan(환수계획)
  2. → 년도별 cash flow(자금운용)
  3. Social duty : 사회적 의의 및 관련법규 검토 / 정부정책은? / 효과는?
  4. Time table
Activity        
Fund        
Legal process        

 

  1. 상품의 구성
  2. → How to structure / Law analysis
  3. Hidden strategic(보이지 않는 변수 찾기 전략)예) 한국화장품 중국진출 어려움은 왜? 예견치 못한 사소한 것들(색깔별로 승인 등등)
  4. → fact(발생요인) / risk(리스크 관리) / risk tack(리스크 보완) / 경영전략
  1. 총평(Total evaluation)

 

※ value(가치) 창조는 무결점(zero defection)하되 보이지 않는 사업의 변수를 찾아내는 것임. 즉, 리스크가 50%이상 나는 것을 0%로 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임.

 

Organization Plan에 대하여

coordinator group          cooperator group           business group

Spec化 15%                             spec化 15%                       전문가 60~70%

 

1인당 생산성은? / soft 능력 향상, hard 부문 축소

 

project발표 Market 전략 Financing전략 Value 창조 상용화 수행 Maintenance실행 및 관리

↓                                        ↓                         30%                         60%                     ↓                              ↓

Spec化(표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