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파산’의 두려움과 청지기의 변화-다해 연중25주일

126_1121다해 연중25주일(루가 16:1-13)

 

노후파산의 두려움과 청지기의 변화

 

교우 여러분! 추석 잘 보내셨나요? 여러분은 어떤 노후를 꿈꾸시나요? 다들 건강한 몸으로 가끔씩 가족들과 여행도 하는 그런 행복한 그림을 그릴 겁니다. 반대로 절대 이렇게는 늙지 말아야지 하는 건 있나요? 있습니다. ‘무전장수, 유병장수, 독거장수’가 그겁니다. 돈 없이 늙고, 병에 걸려 늙고, 혼자 살며 늙는 것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우리의 노후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얼마 전 일본 NHK에서 홀로 사는 고령자 600만 명의 현실을 찍은 ‘노후파산’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마치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섬뜩하였습니다. 현재 일본의 홀로 사는 고령자 600만 명 중 70만 명 정도가 생계보호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만 명 정도는 생활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연금만으로 근근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200만 명에게 병이 걸리거나 다른 변수가 생겨 생활이 파탄 나면, 이게 바로 노후파산입니다. 이들은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어디 외출도 하지 못합니다. 전기료를 절약하기 위해 전기까지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기까지 끊고 식비까지 최대한 아껴보지만 결국 파산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특별히 게으른 사람들도 아닙니다. 열심히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노후파산에 이르는 과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핵심은 돈, 건강, 관계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돈도 없고 건강도 없고 친구도 가족도 없는 노후, 그 중에서도 돈이 가장 문제입니다. 돈이 없으면 관계도 건강도 잃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데는 돈이 들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사람 만나는 걸 피하게 됩니다, 돈이 없으면 작은 병을 크게 키우면서 건강까지 잃게 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사실 노후파산의 근본원인 중 하나는 고용입니다. 고용의 토대가 흔들리면 노후파산이 늘어나는 겁니다.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 미래에 대비하지 못하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청지기 이야기’는 바로 고용불안, 노후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소문이 돌자, 주인은 청지기에게 해고통보를 합니다. 그러자 해고위기에 몰린 청지기는 살길을 찾기 위해 태도를 바꿉니다. 그것은 과거에는 사람이 아닌 돈을 위주로 해서 사람들에게 원성을 들었다면, 이제는 돈보다 사람과의 관계회복을 중시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그러자 결과적으로 청지기가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듣습니다. 얼핏 들으면 이해가 되질 않는 것 같지만,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납득이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 소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문의 내용은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문대로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청지기가 주인에게 빚진 사람의 돈을 조금씩 탕감해 주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고 보기 보다는 오히려 주인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높은 이자를 매기거나 혹은 적어도 상환규정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적용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원성을 들었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돈도 제때에 회수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나쁜 평판으로 인해 청지기 자리마저 위태롭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음으로 ‘청지기의 대처’입니다. 노후파산 위기에 직면한 청지기는 살기 위해 180도 태도전환을 합니다. 그 전에는 기름 백말이면 백말, 밀 백 섬이면 백 섬 따박따박 갚아야 한다고 독촉했는데, 지금은 오십 말, 이십 말씩 빚을 경감해 주은 것이었습니다. 달라진 청지기의 태도에 채무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마도 원망스러운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저 고맙고 하루속히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뜻밖의 결과’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루가 16:8) 도대체 어떤 결과가 나타났기에 청지기는 해고되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받았을까요? 아마도 경감된 채무자들이 빚을 빨리 상환하는 바람에 주인의 곳간이 다시 채워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청지기는 참 좋은 사람이다”라는 소문을 내주었던 것이 아닐까요?

약삭빠른 청지기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만약 너희가 세속의 재물을 다루는 데도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너희의 몫을 내어주겠느냐?”(루가 16:9-12)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살 동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재산, 지위 등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비록 사람에 따라 관리하는 재산이 많거나 적을 수 있고, 지위가 높거나 낮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각자 맡겨진 역할이 다른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청지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맡겨주신 청지기 직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그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결실을 내는 삶’입니다. 장부상에 아무리 기름 백 말, 밀 백 섬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창고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숫자놀음에 불과할 것입니다. 해고위기에 몰린 청지기는 자신을 변화시킴으로 실질적인 결과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처럼 공상과 상상 속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많건 적건 간에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열매를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달란트의 비유’에서 보듯이 주님은 우리가 받은 달란트가 아무리 적어도 가만히 있지 말고 노력하는 모습을 원하십니다.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이것이 주님의 원하시는 청지기의 삶입니다.

둘째, ‘관계를 회복하는 삶’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청지기는 처음엔 재산 자체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결국에 가서는 주인과의 관계도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살기 위해서 재산이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개선에 초점을 두자, 결과적으로 주인과의 관계도 회복되었습니다. 청지기는 이 과정에서 재물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점을 지적한 거라고 하겠습니다. 즉, 재물이 중심이 되면 관계가 어그러질 수 있는 위험이 높지만, 하느님을 중심으로 삼으면 재물은 관계를 회복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재물보다도 더 크신 분이고, 모든 물질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제’라고 부르는 단어는 원래 經世濟民이라는 말을 줄인 것입니다. 그 뜻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Economy의 번역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Economy는 그리스어 Οικoνομοs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 뜻은 ‘집안 살림을 하는 사람’입니다. 얼핏 보면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사실 가정 살림살이와 경세제민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가정이나 사회, 국가는 모두 한정된 재원을 구성원들에게 나눠주고 관리하는 살림살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들은 청지기 이야기도 ‘살림살이’라는 관점, ‘경세제민’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추석 연휴입니다. 추석은 한 해 우리가 땀 흘려 일해 수확한 곡식에 대해 감사하고 기쁨을 나누는 축제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불황이라 우리네 살림살이가 참 어렵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취업이 되질 않아서 어렵기도 하지만, 노후세대들 역시 돈 없이 늙고, 병에 걸려 늙고, 혼자 살며 늙는 노후파산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마치 해고위기에 내몰린 청지기와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청지기가 자신을 철저히 반성하고 태도를 바꾼 것처럼 우리도 지나 온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리하여 다시금 주님과 이웃과 관계가 회복되어 주님 보시기에 칭찬받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은혜를 간구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