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묵상: 헤어짐과 기다림(승천일)

images헤어짐과 기다림

오늘은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늘을 오르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다가 제자들과 헤어지시는 모습에 눈길이 갔습니다. 갈릴리 지방에서 예루살렘까지 동고동락한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대화합니다. 고진감래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영화의 한 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시고 먼 길을 떠나시고, 제자들은 새로운 기대를 안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마치 두번째 영화 시리즈 개봉을 기다리듯이 말입니다.

우리 가족은 기러기 가족입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공항에서 가족과 헤어지면서 한동안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울적하기도 하지만, 다시 만날 거라는 기대에 슬픔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가족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헤어짐을 묵상하면서 우리네 삶 속에 헤어짐과 기다림을 생각합니다. 헤어짐이 영원한 이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으로 승화될 수 있는 나날이 되도록 기도해 봅니다.

오늘의 말씀: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 가셨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당신이 제 맘 속에 다시 오시길 기다립니다.”

성령: 선교적 영성의 원천(부활6주 월요일)

thessaloniki31부활6주 월요일

(사도 16:11-15 / 요한 15:26-16:4)

성령: 선교적 영성의 원천

여러분은 기도 중에 환시나 환상, 영상 혹은 음성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있었다면 어떠한 상황 하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나요? 오늘 우리가 들은 사도행전은 바울 일행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첫번째 선교열매인 옷감장수 리디아와 그의 가족에게 예수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앞 대목은 바울의 선교 아니 기독교 선교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 지역, 지금으로 말하자면 터키의 소아시아 지역 선교가 난관에 봉착하자 기도 중에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환시를 본 것입니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영상’이라고 번역하고 있고, 영어성경에는 ‘vision’, 중국어 성경에는 ‘异象’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령께서 기도 중에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啓示(Revelation)’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에는 크게 3차례에 걸쳐 성령의 계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신도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세찬 바람소리와 불 모양으로 내려오셨고(사도 2장 참조), 두번째는 이방인 고르넬리오와 사도 베드로에게 기도 중에 각각 환시를 보여주시며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열어 주셨으며(사도 9장 참조), 세번째는 바울일행에게 유럽으로 건너오라는 환시를 보여 주셔서 유럽선교의 첫 문이 열리게 된 것(사도 16장 참조)입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선교의 고비고비마다 비전을 보여주시며 새로운 길로 안내해 주셨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협조자이신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협조자 성령은 우리를 당신의 증인이 되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건하게 해 주실 거라고 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성령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선교의 원천이자, 영성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통하여 그리고 성령 안에서 우리의 기도와 선교적 활동은 하나가 됩니다. 이제 기도는 더 이상 기도에서 멈추질 않고, 선교적 활동으로 연결되고 열매를 맺습니다. 반대로 우리의 선교적 활동도 방향을 잃고서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인도로 올바른 방향을 잡고 나아가게 됩니다.

사실, 기도와 선교를 연결시켜 주시는 성령의 활동은 예수님과 사도행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선교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션(Mission)’이란 영화와 그 주제곡에 가사를 실은 노래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가 그 대표적 예입니다. 선교사들은 기도 중에 환상(Fantasia)을 보고 그 환상을 ‘축소지(Reduction)’라는 이상적 선교 공동체 마을로 실현시켰습니다.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에 있는 축소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인류유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교사들의 꿈과 열정이 담겨있는 선교유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성령은 기도 중에 비전과 환상으로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시고 우리를 ‘하느님 선교(Missio Dei)’의 일꾼으로 불러 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Calling)에 응답합니다. 성령은 베드로와 고르넬리오를 부르셔서 만나게 해 주시고, 사도 바울을 부르셔서 보스포러스 해협의 깊고 푸른 바다를 건너 유럽사람들에게 기쁜소식을 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에게 환상을 보여주셔서 대서양을 건너 남미의 원주민들이 이상적 선교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도 성령의 Calling, 성령의 Vision, 성령의 Fantasia를 불어넣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3가지 요소가 서로 결합되어 있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3가지 요소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상황입니다. 오늘 들은 독서를 보면 바울일행이 계획했던 소아시아 선교가 가로막히게 됩니다. 또한 ‘미션’이란 영화의 배경을 보면, 종교개혁으로 유럽이 혼란에 빠지면서 교회의 선교정신이 퇴색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예측과 행동이 벽에 부딪혔을 때를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오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 때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내려놓고 성령께 마음을 열고 길을 묻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고, 선교사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비전을, 판타지아를 봤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실천과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이 리디아를, 선교사들이 남미 원주민들에 기쁜소식을 전하면서 교회라는 열매가 맺어집니다.

제 개인 삶을 되돌이켜 볼 때, 성령께서는 제가 가려는 길이 막히고 기도 중에 그 길을 물을 때, 비전을 보여주시고 실행할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결실을 맺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그러한 것을 체험하셨다면, 주님께 감사 드리고 찬양을 드리십시오. 그러나 아직 체험하지 못하셨다고 하더라도 실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늘 여러분 곁에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기만 하다면 그것은 들려지고, 보여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지금까지 해오던 우리의 패턴을 잠시 내려놓고 주님께 의탁하고 기도하면, 성령께서는 새로운 비전, 새로운 판타지아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에 응답하고 실행한다면 바울이 유럽선교에 첫발을 딛고, 선교사들이 남미선교에 첫발을 디딘 것처럼, 우리 교회도 새로운 선교지평이 열릴 것을 믿고 희망합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협조자 성령이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에 새로운 비전, 새로운 판타지아를 보여 주시길 희망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자, 일어나 가자(부활5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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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14:19-28 / 요한 14:27-31)

 

자, 일어나 가자!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운동경기에 종종 듣는 중국 국가 멜로디 기억나십니까? 저는 오랫동안 중국에서 지내서 그런지 중국 국가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이 노래는 ‘의용군 행진곡(义勇军进行曲)’으로 1935년 만들어진 곡이며 영화 ‘풍운아녀(风云儿女)’의 주제가였습니다. 이 노래 가사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起来起来! 起来!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我们万众一心           우리 모두 일치단결하여

冒着敌人的炮火       적의 포화를 뚫고

前进                         전진하자

冒着敌人的炮火       적의 포화를 뚫고

前进 前进 前进 进。전진 전진 전진 전진하자.

 

아시다시피 당시 중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이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날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최후의 만찬을 하면서 마지막 말씀을 하시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평화와 차원이 다른 참 평화를 말씀하시면서 이 세상의 권력자도 당신을 결코 이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성부 하느님이 명하신 이 평화를 반드시 알리고 실천하실 거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 “자, 일어나 가자”(14:31)라고 말씀하십니다.

공동번역에는 “자, 일어나 가자!”, 영어성경에는 “Rise, let us go from here.”, 중국어성경에는 “起来,我们走吧!”라고 되어 있는데, 그 중 저에겐 중국어 성경의 표현이 더 비장하고 결연한 느낌으로 와 닿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자, 일어나 가자”라고 하시는 30대 초반의 나사렛 청년 예수의 목소리에서 젊은 의용군들이 적의 포탄을 뚫고 용감하게 전진하는 그런 용맹스러운 모습과 겹쳐져서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자, 일어나 가자!”라는 청년 예수의 음성은 2000년이 넘게 시대를 관통해 오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무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 보면 그칠 줄 모르는 예수운동의 원동력이 되는 힘찬 전진의 음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들은 사도 바울의 활동은 그러한 예수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그를 돌로 쳐 성 밖으로 끌어냈지만 깨어나서 다시 예수를 증언하러 여러 도시로 전진하고 또 전진했습니다. 그와 바르나바는 각 도시를 돌며 교회를 조직하고 지도자들을 뽑아 세우며 기도와 격려를 중단없이 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수운동의 활력으로 거대한 세상의 힘인 로마제국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고, 마침내 “세상을 이겼다”(16:33)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참된 평화를 설파하시며 “자, 일어나 가자!”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오늘 우리나라, 우리 교회, 우리 각자에게도 다음과 같이 이 말씀을 외치고 계십니다: “자, 일어나 가자, 한국인들이여!”, “자, 일어나 가자, 나의 교회여!”, “자, 일어나 가자, 나의 사랑하는 벗들이여!”. 이제 나사렛 청년 예수의 힘찬 부르심에 우리모두 “예”하고 응답합시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을 떨쳐 내고 벌떡 일어나 청년 예수와 함께 전진합시다.

“자, 일어나 가자!”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 대한민국이, 우리 교회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일어나서 전진할 수 있도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