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로 온 새로운 과거(루가20:27-40)

KakaoTalk_20171124_090342753오늘의 말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오늘의 묵상: 현재로 온 새로운 과거

부활은 크리스천 신앙의 핵심이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과 사두가이파 학자들 간에 부활에 대한 논쟁에서 학자들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형제들의 아내가 되었던 여인이 부활 후,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 대목을 묵상하다가, 지난 달 서울시청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서울시에서는 정동역사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 정동일대 덕수궁을 중심으로 영국, 러시아, 미국 등의 서양열강 대사관, 그리고 성공회, 감리교, 구세군 교회 등의 종교기관, 또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등의 서양식 교육기관 등의 역사적 건물과 길을 복원한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캐치 프레이즈가 “깨어나라, 대한제국이여!”입니다. 구한말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주적인 제국을 이루고자 몸부림쳤던 고종의 꿈을 부활시키는 기획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과거를 복원하고 대한제국의 부활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과거의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꿈꾸었던 이상이 현재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그 꿈은 현재에서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완전한 실현을 위해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사두가이파 학자들이 언급한 여인은 여러 형제들의 아내가 되었으나 자식도 얻지 못하고 그 가문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과거의 대한제국도 이 여인처럼 나라의 존립을 위해 이 나라 저 나라에 의지했으나 결국 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살아있는 하느님을 고백한다면,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은 과거가 아닌 과거요, 현재에서도 생생히 살아있는 과거일 것입니다. “깨어나라, 대한제국이여!”를 들으면서 구한말 우리 선조가 꿈꾸었던 소망이 살아나길 기도해 봅니다.

오늘의 기도: 모든 민족이 당신 앞에 살아있게 하소서.

신수도원운동(성공회신문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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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수도원 운동’에 대한 소감

이경래 베드로 신부(서울교구 교육훈련국&선교국)

서울교구 선교국 부설 브렌든 선교연구소는 이웃 교단들 소속 사역자들이 만든 ‘개척학교 숲’과 협력하여 ‘교회의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 of Church)’ 훈련과정을 시작하였다. 영국 성공회가 급변하는 새로운 문화와 상황 속에서 선교적 활동의 결실로 이룩한 이 훈련은 모두 16개 과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첫 과정인 ‘파이오니어 사역’훈련이 11월부터 한국에서 시작된다. 이 과정이 시작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성공회 내 세계적인 선교단체인 CMS(Church Mission Society)에서 공동체와 지역선교를 담당하고 있으며 『신수도원 운동』의 저자인 마크 베리(Mark Berry) 신자사역자가 방한하였다. 두 번에 걸쳐 대중강연을 하였는데, 그 중 10월 30일 대학로교회에서 한 ‘새로운 수도원 운동’에 대한 강연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에 대한 본인의 소감을 적어 보고자 한다.

Monastic(수도원)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모노스(μονοσ)’에서 유래한다. 그 뜻은 ‘홀로’ 혹은 ‘하나’라는 뜻이다. 로마제국의 종교가 된 기독교가 권력화되고 정치화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고자 한 사람들이 사막으로 가서 침묵과 관상에 잠겨 하느님을 찾으려 했다. 사막의 은수자들은 홀로 또는 영적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였고, 이러한 사막의 수도원 운동은 점차 유럽으로 확산되어 성 베네딕트로 대표로 하는 정주형 수도원,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로 대표로 하는 탁발 수도원, 성 도미닉으로 대표되는 설교와 교육 수도원 모델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 수도원들은 사막의 은수자들과 달리 세상을 복음화 하는 선교에도 앞장섰다. 서울교구에 있는 브렌든 선교 연구소의 수호성인인 영국의 성 브렌든 수도자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헨리8세 때 영국이 로마와 결별을 하면서 헨리8세의 수장령에 반대했던 영국의 수도원은 강제로 해산되면서 영국의 수도원 운동은 19세기 옥스퍼드 운동으로 전례와 수도원 운동이 재건되기까지 기나긴 암흑기를 맞게 되었다.

마크 베리는 여기까지 수도원 운동에 대한 간략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바로 20세기 후반부터 일어난 영국의 신 수도원 운동을 소개하였다. 그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모달(modality)’과 네트워크와 이동을 특징으로 하는 ‘소달(sodality)’이라는 교회의 두 가지 흐름을 말하면서 신수도원 운동은 소달의 범주로 설명하였다. 동시에 신 수도원 운동은 과거의 단절이 아닌 과거를 재구성하는 거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전통, 공동체, 영성, 선교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운동은 ‘수도생활의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 of Religious Life)’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국의 종교개혁으로 수도원 역사가 단절된 동안 Devotio Moderna, 大대레사, 십자가의 성요한, 이냐시오 로욜라의 예수회 등과 같은 유럽대륙의 근대 수도원 운동을 경험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상호영향을 받고 있는 글로벌한 현대사회 속에서 새로운 수도원 운동은 한국사회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에게 또 다른 하느님의 부르심 임에는 틀림없다고 본다. 세계 성공회의 이러한 좋은 경험을 잘 소화해서 한국사회에서 우리 교회가 새로운 영적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빛과 소금이 되길 희망해 본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루가 14:25-33/로마13:8-10)

intentional-discipleship가해 연중 31주 수요일 (로마 13:8-10 / 루가 14:25-33)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우리 교회는 전 세계에 걸쳐 있는 성공회 형제자매 교회 간의 상통과 일치를 위한 4가지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세계 성공회 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 약칭: ACC)’가 있습니다. ACC는 주교, 사제,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공회 내외적으로 직면하는 다양한 사안들에 대하여 함께 모여 논의하고 연구하고 조언해주는 곳입니다. 2016년 ACC에서 ‘제자도와 제자삼기(Intentional Discipleship and Disciple-Making)’란 제목으로 공식문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문서는 성공회 신자가 단지 ‘신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되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올해 10월 한국의 3개 교구 주교님들이 참석하신 미얀마에서 열린 ‘동아시아 성공회 주교회의’에서도 세계 성공회가 정한 핵심 방향인 ‘제자도’에 대하여 진지한 토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믿는 이들이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선교구호가 아닙니다. 이것의 근원은 예수님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가 되기 위해선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도 3차례에 걸쳐 강조하십니다. 첫번째 강조구절은 26절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여기서 미워한다는 표현에 대하여 오해할 소지가 있어서 히브리어 특성에 대해서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히브리어와 예수님이 사용하셨다는 갈릴리 지방어인 아람어에서는 비교급 표현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자신을 미워하라’는 표현은 진짜로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면서 자기 혈육이나 자신을 더 사랑한다면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두번째는 27절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세번째는 33절입니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자기자신을 덜 사랑하라”, “자기 십자가를 져라”, “자기가 가진 것을 버려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이 모든 말씀의 의미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小我를 벗어나서 大我로 나아가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참된 나, 하느님과 일치된 나, 세상만물과 하나된 내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비롯해 내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물건이나 사람들 속에 갇혀 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구약에서는 십계명과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선 단지 계명준수라는 소극적인 실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로마 13:9-10) 그렇습니다. 사랑은 모든 율법의 마침표이자 완성입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말씀하셨듯이,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신중히 숙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창피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초를 놓고도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한다면 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집 짓기를 시작해 놓고 끝내지를 못하는구나!’하고 비웃을 것이다.”(루가14:29-30)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고민에 빠집니다. 세례 받아 이미 신자가 된 우리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제 어찌해야 되나? 그분을 따르자니 어렵고, 따르지 않자니 큰 일이고…… 참으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우리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울 협조자이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성부께 간절히 기도 드리신 것처럼 우리를 위해서도 함께 해 주십니다. 요한복음에 예수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앞두시고 다음과 같이 격려해 주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 33)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그 길은 내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고, 나에게 부과되는 십자가를 기꺼이 져야하는 자기희생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증오와 미움과 질투와 복수는 어떤 의미에선 삶에 에너지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나와 모두를 파멸로 몰아갑니다. 오직 사랑만이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길을 가신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랑의 길을 함께 걷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협조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용기를 주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하며 하루를 여시길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