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선교 7호(2005.10.)

십자가와 선교
○제 7호 ○ 발행 : 이경래 전도사 ○ 편집 : 이한오 신부
○발행일: 2005년 10월 27일 ◯주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2동 443-20 ○전화 224-7942, 011-9884-7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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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선교는 통일 이후의 동북아선교를 준비하는 성공회 이경래 전도사의 비전을 나누는 중국교회소식지입니다

대장금 열풍

이경래(베드로) 전도사

너희가 내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한류’(韓流)라는 말이 중국에서 생긴 이래, 요즘처럼 뜨거운 화제(!)가 되는 주제도 없을 겁니다. 그 논쟁의 가장 큰 제공자가 다름아닌 한국연속극 ‘대장금’입니다. ‘대장금’은 다른 한국연속극과는 달리 전통문화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먹는 것을 중요시여기는 경향에다, 동아시아전통문화의 ‘원조’라는 자부심이 강한 중국인들에게 대장금은 엄청난 매력이자 동시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길거리를 걷다보면 자주 대장금주제가를 들을 수 있고, 산책하면서 곁에 걷고 있는 아주머니들 이야기를 들으면 어제 방송했던 대장금내용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연속극의 재미에 푹 빠져있음을 보게 됩니다.
잡지나 신문의 문화면에는 ‘대장금열풍’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과 분석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분석은 한국연속극의 기술적인 우수성, 배우들의 수려한 용모, 대본의 정교함 그리고 문화적 유사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전통문화에 대하여 이른바 ‘원조’라고 자부하는 중국은 1919년 ‘5·4운동’(중국의 신문화운동으로 중국이 서구열강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전통의 속박을 타파하고 전면적으로 서구문명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과 사회주의국가가 된 이후 ‘문화대혁명'(1960년대 말부터 10년간 진행된 극단적인 사회주의대중운동으로 전통과 종교에 대한 철저한 파괴, 지식인에 대한 박해 등을 하였음)의 영향으로 전통을 잃어버린데 반해서, 한국은 전통문화를 잘 보전하고 현대화와 잘 조화를 시켰다고 평하면서 이런 문화적 역량이 대장금같은 연속극에 잘 반영된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한편 중국의 대중매체제작자들은 중국이 한국처럼 자유롭게 창작할 환경이 못 된다고 하면서 한국처럼 자유로운 환경이 ‘주어진다면’ 충분히 잘 만들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 자유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를 갈망하고 그것을 위해 온갖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닐까요? 제 중고등학교시절만 회상해 보더라도 똑같은 교복, 똑같은 머리모양을 했고, 대학시절에는 자유롭게 생각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자유를 갈망하고 그것을 위해 힘썼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여러 나라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은 단지 경제적으로 발전한 점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물질적 성장 외에 우리가 자유를 추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그것이 이렇게 대중문화영역에서 결실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체제, 즉 자본주의경제를 취하고 정치적으로는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버는 것에는 ‘상당한 자유’가 허용된 반면, 정신적인 영역에서 자유로운 활동은 ‘일정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바로 이점이 오늘날 중국사람들이 한국연속극이나 영화를 보면서 자신들의 대중문화가 왜 발전하지 못하는지 괴로와하는 진정한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자유에 대하여 쓰다보니 신학생시절 읽었던 책제목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는 자유의 몸이시다’라는 그리스도론관련 책이었습니다. 그 책은 기존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판에 박힌 교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참된 자유는 진리이며, 참 진리이신 예수님이야말로 참으로 자유로우신 분이었고, 예수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예수님의 자유를 본받아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문화란 바로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볼 때 이 문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와 맥이 통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문화를 이야기합니다. 더욱이 일부 기독교인들은 ‘문화선교’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문화는 갈수록 선교의 중요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화선교라는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혼, 즉 예수님이 행하셨던 자유의 진리를 뒤따르려는 우리의 노력이 없다면 요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교는 바로 이러한 혼을 담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의 선교는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자유의 열매, 그리스도교문화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한류현상을 보면서 우리문화와 자유, 그리고 선교를 생각해 봅니다.

<중국교회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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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구앙쉰(丁光訓)주교

이번 호에선 중국교회의 대표적 신학자이자 중국교회의 최고책임자인 정광훈주교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정광훈(중국명: 띵구앙쉰, 영어명: K.H.Ting)주교는 1915년 9월20일 상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상해은행원이었고, 외조부는 성공회사제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래 전공인 기계공학을 포기하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성요한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여 1942년 성공회사제가 되었습니다. 일본군에 의해 상해가 함락되었던 시기 정광훈 신부는 상해국제교회에 봉직하고 있었는데, 피신해 오는 사람들을 돌보는데 힘썼습니다.
1946년 캐나다 기독교학생회초청으로 캐나다로 간 후, 미국, 스위스 등지에서 신학공부 및 세계기독교학생연맹에서 일하였습니다. 한편, 중국이 공산화되었다는 소식에 주변의 많은 사람이 위험을 이유로 귀국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으나, 정광훈신부는 “그곳에 나의 민족과 교회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1951년 공산화된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후, 12개 신학원이 통합되어 남경에서 금릉연합신학원으로 합병되었을 때, 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또한 1955년에는 성공회 절강교구 주교로 피선되었습니다. 그는 공산화된 중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일함과 동시에, 국제적으로는 서방세계가 중국교회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태도에 맞서 조국과 조국의 교회를 옹호하였습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1966년-1976년)기간 극심한 종교박해로 교회 및 신학교가 폐쇄당하고 예배마저 볼 수 없게 된 상황 속에서 정광훈주교 역시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모든 직책을 박탈당하고 소유물은 압수당한 채, 초라한 집으로 강제이주되어 노동과 정치학습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서도 몇몇 신학교 동료들과 집에서 조촐한 기도모임을 갖고 서로 위안하고 격려하였습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지나가고 개혁개방노선으로 다시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을 때, 정광훈주교도 다시 복직되었습니다.
그 후 정광훈 주교는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첫째, 신학계와 일반 지식인계간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기독교를 대표하여 정부의 종교정책에 기독교가 올바로 평가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셋째, 애덕 기금회를 설립하여 사회선교에 힘씀으로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네째, 중국기독교협회대표를 역임하면서 중국 상황 속에서 기독교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연로해서 공식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정광훈 주교는 1999년 우리나라를 공식방문했을 때 대한성공회에도 왔었습니다.

■편집자의 글
얼마 전 알고 지내던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마침 신랑신부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고 또 주말이지만 제가 있는 수원지역의 가까운 교회에서 혼례를 올리기에 ‘못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대성당이 아닌 결혼식에 초대된 것도 오랜만이고,  일반 장로교회에 온 것은 더욱 오랜만이었습니다. 그 교회를 수원에서는 ‘돌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건물이 돌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돌처럼 우직한 신앙인들이 많다는 자부심도 함께 하는 역사를 지닌 교회였습니다.
새로 출발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그 축복의 대열에 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지요. 저는 그 ‘돌교회 ’(기독교장로회 수원교회)의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아주 새삼스런 문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구는 교회를 나서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도록 써 놓았기 때문에, 교회바깥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문구인데,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 모든 사람에게 주신 절대적인 선교적 사명을 가리키는 말로, 세상 속에 폭 빠져 그 사명을 잊고 지내는 이에게는 더욱 새삼스럽고 그래서 부끄럽기까지 한 선포이자 명령인 바로 이 말씀입니다.

“가라! 세상으로!”

■후원해 주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산본교회 아버지회, 평택교회 어머니회(김춘희), 대성당 에스더회, 꽃가지(대성당 새벽미사참여자모임), 지성희 신부, 정진현(클라라), 오산제자교회(김장환 신부), 도봉교회(최은식 신부), 이현우 신부

■후원계좌
639001-01-068228
국민은행  이한오

십자가와 선교 6호(2005.9.)

십자가와 선교
○제 6호 ○ 발행 : 이경래 전도사 ○ 편집 : 이한오 신부
○발행일: 2005년 9월 1일 ◯주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2동 443-20 ○전화 224-7942, 011-9884-7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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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선교는 통일 이후의 동북아선교를 준비하는 성공회 이경래 전도사의 비전을 나누는 중국교회소식지입니다

광복 60주년과 6자회담

이경래(베드로) 전도사

“야훼께서 시온의 포로들을 풀어주시던 날, 꿈이든가 생시든가! 그날 우리의 입에서는 함박같은 웃음 터지고 흥겨운 노랫가락 입술에 흘렀도다. 그날 이교백성 가운데서 들려오는 말소리 “놀라와라, 야훼께서 저 사람들에게 하신 일들!” 야훼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 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시편 126장)

1. 기억의 다름:  “60주년”
올해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나라마다 이 60주년을 기념하는 강조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중국의 경우, ‘항일전쟁승리 60주년’, 일본의 경우, ‘종전60주년’, 한국의 경우 ‘광복6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의 사건에 대한 나라마다 그 기억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현재를 보는 시각, 나아가 미래를 향한 방향이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과거기억의 중심에 ‘전쟁’이 놓여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쪽은 침략자에 대항하여 마침내 승리를 일구어냈다는 자부심이, 다른 한쪽은 종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패전이라는 충격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문제는 과거를 표현하는 현재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양쪽 다 전쟁을 매개로 하는 한, 서로의 상처가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최근의 분위기를 볼 때, 전쟁의 추억을 다시 한번 기억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증오를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이것은 미래에 불길한 기운을 던져주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사실 고통의 정도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아마도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고통의 강도가 더 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라가 망한 것을 물론이려니와 원치않은 침략전쟁에 동원되어 생명이 희생되었고, 심지어 독립운동하러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해외로 나갔다가 일본의 압잡이로 오해받거나 자기나라군대가 아닌 중국군소속으로 이름도 없이 죽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해방된 오늘 자기 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에선 이들에 대한 이름은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식민지 지배가 갖고 온 슬픈 우리민족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복’이란 기억은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의미가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광복60주년’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시는 남의 나라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나아가 완전한 광복을 이루겠다는 미래에의 맹세라 하겠습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2. 미래를 향한 갈림길: 6자회담
올 여름 북경에서는 6자회담이 열렸습니다.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치열한 각국의 입장이 오고간 모습이 마치 총성없는 전쟁을 보는 듯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보도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중국중앙방송국 보도채널이 하루의 절반을 할애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생방송은 물론이고 많은 전문가들이 나와서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가하는 토론프로그램을 보노라면 마치 6자회담의 당사국이 한반도가 아닌 중국인가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중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6자회담이지만 저는 우리가 우리자신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않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상당한 입장차가 존재하고 그래서 잠시 쉬었다가8월말이나 9월초에 다시 회담이 개최될 정도로 힘든 회담이지만 멀리 내다볼 때, 복음서에 나오는 ‘때’가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민족을 보호해 주신다는 믿음과 희망을 다시금 해봅니다. 그러나 이 ‘복음(기쁜소식)’이 참으로 우리에게 기쁘게 다가오기 위해서는 우리의 ‘회개’가 무엇보다 필요하겠습니다.
60년전 우리민족은 갑자기 다가온 ‘기쁜소식’을 제대로 맞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강대국의 분할로 민족이 갈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과오를 반복해선 안되겠습니다. ‘회개’란 어떤 의미에선 ‘준비’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쁜소식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머지않아 6자회담이 다시 열립니다. 허리끊겨 섬나라로 전락해 버린 상태를 극복하고, 갈라진 또 하나의 겨레를 포용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회개를 하여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할 사명을 갖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 선교적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께 회개의 은혜를 주시길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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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성공회 사제와의 만남
지난 6월 주낙현 신부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주 신부님의 은사이며 미국 서부 버클리 성공회신학교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케이트(John Kate)신부님이 띵구앙쉰(丁光訓)주교님을 만나러 남경에 오실 때, 한번 만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국에 온 지 몇 년. 그동안 기독교신자들은 만났지만 성공회정체성을 갖고 있는 분들을 만나지 못했던 저에게 이 소식은 기쁨과 약간의 긴장감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이분을 만나서 이야기할 내용을 정리할 겸, 약간의 글을 준비하였습니다.
그 후 6월말, 이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남이지만 마치 그전에 몇 번 만난 사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신부님께서 한국에서 했던 강의내용물과 성공회대학 신학연구소에서 발행한 잡지를 주시면서 한국에서 받은 인상, 띵구앙쉰주교님에 대한 인상, 그리고 과거 파나마에서의 선교체험, 그리고 필리핀성공회신학교에서의 강의 등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 왜 중국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선교구상, 그리고 제 개인적인 신앙체험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식당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은 이분과 나눈 이야기 중에서 한국과 세계성공회가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선교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눈 대화입니다.

1.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치

케이트 신부님은 한국이 마치 이스라엘민족같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백성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결국 이민족에게 멸망되어 유배를 겪는 등 같은 고생을 했듯이, 한국도 주변민족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민족이 십자가와 같은 운명을 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의 눈으로 봤을 때, 그리스도의 부활이 십자가의 고통이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처럼 남과 북의 화해, 나아가 강대국간의 대립을 종식시키는 것도 십자가를 짊어진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민족은 평화와 화해라는 선교사명을 받은 민족이라고 하였습니다.

2. 동아시아 성공회선교를 어떻게?

저는 우선 두 가지 영역을 통하여 접근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즉, 사회선교영역과 성공회인재양성. 먼저 사회선교영역은 중국이나 북한이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중국교회도 사회선교단체가 있고, 북한도 과거 식량원조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나 일본, 미국 등 성공회가 국제적 연대를 통해서 선교하면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본다고 하였습니다.
성공회인재양성은 동아시아차원의 성공회사목센터를 남경이나 필리핀 등에 설치해서 중국의 신학을 성공회정신으로 해석, 북한의 교회인재 등을 성공회정신에 입각해서 양성, 나아가 동아시아와 서구성공회신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동아시아 성공회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케이트 신부님은 적극적으로 찬성하시면서 제도적인 차원에서 검토해서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쳐 추진하면 좋을 아이디어라고 하셨습니다. 이분이 신학교에서 가르치시는 분이라서 특히 성공회인재양성을 위한 사목센터분야에 큰 흥미를 나타내셨습니다. 지금은 필리핀이나 한국 등 개별적으로 방문해서 신학적 교류를 하는데 이렇게 동아시아 차원에서 센터가 있으면 더욱 효율적이라고 하셨습니다.
■편집자의 글
예언자 예레미아가 괴로워 하느님께 넉두리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어찔할 바 모르겠다는 투정을 부리는 것입니다. 야훼하느님께서 다 들으시고는 그런 ‘시시한 소리’는 집워치우고 당신의 말씀을 들어라고 선포하십니다.

“너의 마음을 돌려 잡아라. 나는 다시 너를 내 앞에 서게 하여주겠다. 그런 시시한 말은 그만두고 말 같은 말을 하여라. 나는 너를 나의 대변자로 세운다. 백성이 너에게로 돌아와야지 네가 백성에게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예레 15:19)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광야에 선 자는 외롭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그 길을 포기하고 싶은 악마의 유혹에 늘 시달립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그 길을 가도록 힘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레미아의 말씀에서 보듯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길 잃은 양과 같은 ‘백성들’을 쫒아가지 말고, 하느님께서 심부름을 시키는 자가 그 백성들을 바른 길로 안내하라는 준엄한 명령을 주시는 것이지요. 우리가 가야할 길이 없고, 있어도 그 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얼마나 불안할까요?
다행히도 우리에겐 가야 할 길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니고, 잘나서 하는 것 도 아닙니다. 다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님의 명령에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 이 전도사는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딸은 9월이면 다시 유치원에 다니게 된다 합니다. ‘우공이산’을 인터넷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이전도사가 그 이름처럼 우직하게 한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때에 여러분께서도 함께 기도하여 주십시요. 고맙습니다.

■후원해 주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산본교회 아버지회, 평택교회 어머니회(김춘희), 대성당 에스더회, 꽃가지(대성당 새벽미사참여자모임), 지성희 신부, 정진현(클라라), 오산제자교회, 석상배

■후원계좌
639001-01-068228
국민은행  이한오

 

십자가와 선교 5호(2005.7.)

십자가와 선교
○제 5호 ○ 발행 : 이경래 전도사 ○ 편집 : 이한오 신부
○발행일: 2005년 7월 2일 ◯주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2동 443-20 ○전화 224-7942, 011-9884-7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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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선교는 통일 이후의 동북아선교를 준비하는 성공회 이경래 전도사의 비전을 나누는 중국교회소식지입니다

중국에 오는 한국유학생, 한국에 오는 중국유학생
-성공회대학을 통한 중국인유학생 선교에 관하여

이경래(베드로) 전도사

중국의 교육부발표에 의하면, 최근들어 중국에 유학하는 학생중 한국학생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제일 많다고 합니다. 북경, 상해는 말할 것도 없고 제가 있는 이곳 남경도 재작년부터 한국학생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1년내지 2년정도의 언어연수생들입니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중국대학내에 한국어학과가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한국정부나 관계기관의 지원없는 상태에서 중국대학 스스로의 필요에 의하여 생겨나고 있다(남경만해도 2년사이 두 군데가 생겨났고 내년엔 남경대학에도 생긴다고 합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학과는 현재 인기학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취업률이 거의 100%에 이를 정도로 높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중국에서 날로 취업하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할 때, 한국학과는 중국학생들에게 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비단 경제적인 이유뿐 아니라 활발해진 문화적인 교류 등으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한국에 대한 호감과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특별히 최근들어 계속되는 일본의 과거사왜곡발언과 극우적인 행동 등으로 일본과의 경제 및 문화교류가 예전 같지 않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언어는 선교에 있어서 첫 관문과도 같습니다. 서양의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한 활동 중 제일 심혈을 기울인 것이 성경번역인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서 교육선교 역시 중요하였습니다. 즉, 당시 중국이나 조선이나 서양의 신학문, 신기술을 필요로 하였고 선교사들은 그러한 시대적 요청을 선교와 접목시켰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중국과 한국간의 다방면의 걸친 활발한 교류는 우리에게 선교적 상상력과 도전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공회는 이려한 시대적 현상에 대하여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먼저, 저는 중국대학의 한국어학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의 한국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절반가량이 ‘취업준비’를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로 뽑았고, ‘한국어가 좋아서’, ‘한국문화를 알고 싶어서’등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약 1년 정도 언어연수를 받으러 한국에 간다고 합니다. 마치 한국의 중국학과 학생들이 언어연수 받으러 중국에 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흐름을 선교적으로 잘 활용하기 위하여 예컨대, 성공회대학내 해외교류센터를 개설해서 한국어과목을 개설함과 동시에 중국의 대학과의 교류내지 적극적 홍보를 통해서 널리 알리고 이들 학생들을 적극 유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성공회대학내에 있는 중국학과 학생들과 일대일 연결을 맺어주면 한국학생입장에선 언어를 연습할 수 있고, 중국학생입장에선 한국어 및 한국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성공회대학의 학풍과 성공회의 정신을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들 학생 중 일부는 나중에 성공회대학으로 유학을 오거나 혹은 중국에 돌아가서 성공회대학과 성공회를 통해서 체험한 한국문화와 성공회정신을 중국사회에 실어 나르는 ‘문화의 전령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공회대학교와 교회 역시 이들을 통해서 중국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거라고 봅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더욱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주시리라 희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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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의 묘 앞에서 동료들과 함께 한 이경래 전도사(왼쪽)

예수님의 치유와 선교
– ‘황우석 신드롬’에 부쳐

이한오(프란시스) 신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가 성공적으로 진전되면서 세계전체가 난리다. 혹자들은 그를 구세주처럼 떠받들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그 연구의 과정과 결과가 인륜에 위배될까 싶어 두려워하는 눈빛도 크다. TV의 각종 토론프로그램이나 신문지상을 보면 갖가지 현란한 논리로 치장하는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 남는 이야기는 이것 아닌가 싶다.“나는 황우석에 찬성 혹은 반대한다. 당신은 어떠하냐?”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두 종류밖에 없는 것일까? 그리고 줄기세포로 난치병을 낳게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인가? 나는 이 귀중한 지면을 통해 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싼 윤리적 논쟁에 가담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 사람의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예수께서는 인간의 치유를 어떻게 하셨는지 살펴보고, 이를  우리의 선교방식과 연관하여 반성해보고자 한다.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하고 크게 소리쳤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하셨다.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 하시면서 그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루가 17:11-19)

여기서 예수님이 열 사람 모두에게 한 말씀과 돌아온 단 한 사람에게 한 말씀 사이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다.
예수님이 치유받은 나병환자 열 사람 모두에게 한 말씀은 사제들에게 몸을 보이라는 것인데, 이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회복하여 환자의 육체적․사회적 차원의 치유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한 말씀은 되돌아와 하느님을 찬양한 사람에게만 하신 말씀이다. 복음서에서 ‘일어나다’는 말의 희랍어 아니스테미(ἀνίστημι)는‘부활하다’는 뜻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유추해 풀어보면“부활하여 가거라. 넌 참으로 살았다.”는  뜻이 되고, 이는 예수님의 치유선포는 육적인 치유 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전일적 차원의 치유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히 육체적 병을 고쳐서 목숨을 연장시키거나 사회적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치유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부활의 삶이 되도록 유도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한 의술행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부활하도록 돕는 사건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사람이 부활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은 육체의 튼튼함으로는 부족하고, 나병환자였던 사람이 되돌아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마음, 곧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육체는 건강하지만 불행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거꾸로 육체는 불만족스럽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발견할 수 있지 않던가? 이러한 사례는 다시 한번 인간의 치유(부활)가 물리적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의술(의사)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집착은 몸을 중시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그 와중에 신앙인조차도 무엇이 보다 본질적인 치유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찬성하냐 반대하느냐 하는 문제를 뛰어넘어, 인간이 존재(삶)하는 목적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상태를 위해, 지금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활사건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질적인 변화를 통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지, (다시 죽을 라자로의 부활처럼) 단지 죽었던 육신이 다시 소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선교 역시 사람과 사회를 살려 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의술이나 복지 그리고 학문까지도 그것들은 선교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이 소식지가 염원하고 있는 중국이나 북한 선교역시 물량주의에 기초하여 생활의 외적 조건을 바꾸는 데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에 줄기세포와 관련된 의술을 선교의 도구로 한다 해도 그것 역시 또 다른 모습의 물량주의이지, 복음의 참모습은 아닌 것이다. 황우석 교수와의 친분을 자량하면서 최근‘부활’을 시도하고 있는 가수 강원래 씨의 경우. 나는 이미 그가 부활의 기회를 맞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다시 예전처럼 ‘부활’하고 싶은 것 같다. 그의 정신상태도 함께 부활할 것인지 지켜 볼 것이다.
예수님의 치유는 부활의 메시지와 함께 선교의 본질로 넘어가 오늘날 우리들의 가슴에서 불타고 있다. 선교는 그들의 육체적, 경제적 필요를 채워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영적, 문화적 차원까지 나아가 근본적인 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돌아와 예수님의 축복을 받은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치유 사건이 부활의 메시지를 담은 선교로 이어졌듯이, 우리들의 선교 역시 (그것이 비록 무척 어렵다 하더라도!) 정공법을 선택해야지, 돈과 술수에 힘입은 얄팍한 방법론에 의지해서는 안 되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천명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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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선교 4호(2005.5.)

십자가와 선교
○제 4호 ○ 발행 : 이경래 전도사 ○ 편집 : 이한오 부제
○발행일: 2005년 5월 18일 ◯주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2동 443-20 ○전화 224-7942, 011-9884-7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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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선교는 통일 이후의 동북아선교를 준비하는 성공회 이경래 전도사의 비전을 나누는 중국교회소식지입니다
생명과 행복의 길
-대륙과 대만에서 불고 있는 통일열기를 보며

이경래(베드로) 전도사

4월 26일 남경뤼코우(綠口)공항에 도착한 대만 국민당 주석 롄잔(連戰)은 다음과 같은 말로 공식적인 중국대륙 첫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타이뻬이(대만의 수도)에서 거리상 그리 멀지 않은 이곳 남경까지 오는데 실로 수 십 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1946년 일제가 패망한 후, 국민당의 장개석과 공산당의 모택동 간의 회담이 있은지 6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양세력이 이제 ‘하나의 중국, 조국의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다시 악수를 하였습니다.
국민당 주석의 공식방문이 끝나자 마자, 곧 이어 대만 친민당 주석 쏭추위(宋楚瑜) 역시 대륙을 공식방문하였습니다.
지금 중국은 온통 통일에 대한 기대와 이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한 분위기입니다.
제가 속한 역사학과(중국근현대사)선생들과 학생들 역시 양안관계(중국에선 대륙과 대만간의 관계를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에 대하여 각가지 다양한 분석과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토론 중 그들은 자연스럽게 저에게 다음과 같은 종류의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과 조선은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가”, “북핵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한반도는 전쟁인 날 것인가, 아니면 평화적인 대화로 해결될 것인가” 등등.
이들에게 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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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릉: 남경 자금산에 있으며 이곳에 제1차 국공(國共)합작의 구심점이었던 손문(中山은 호)의 유해가 모셔져 있음. 최근 대만의 정치지도자들 모두 이곳을 참배하였음.

질문을 저 역시 똑같이 묻겠습니다. “대륙과 대만은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가”, “현재 대만여당에서 주장하는 대만독립문제는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 “양안간에는 전쟁이 날 것인가, 아니면 평화로운 대화로 해결될 것인가”. 사실, 한반도의 남북문제이건 아니면 중국과 대만의 양안문제이건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것은 중국과 한국이 서양과 일본의 침략이 낳은 후유증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지금 분단되어 있는 이 상태를 어떻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극복하느냐가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5년 전을 회상해 봅니다. 그때 저는 신대원생이었습니다. 6월의 초여름, 한창 기말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평양비행장에서 남북간의 정상이 서로 악수하면서 만났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때 저는 한민족으로서 동시에 기독교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기도하면서 찾았습니다. 주님께선 제게 우리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중국과 중국교회를 볼 생각을 불러일으켜 주셨고 그래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저는 중국에서 제3자로서 중국인들의 통일열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민족의 통일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 중국이나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로 인해서 피를 흘리고 싸운 깊은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반도에선 북한과 미국간의 첨예한 대립, 중국에선 대만의 독립추진으로 전쟁의 공포가 내리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열과 전쟁의 분위기가 높아지는 것은 동시에 화합과 평화에 대한 갈망도 같이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현재 우리나 중국이나 평화와 전쟁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야훼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보아라, 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을 너희 앞에 내놓는다. … 너희나 너희 후손이 잘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 그것은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의 말씀을 듣고 그에게만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그것이 야훼께서 너희 선조,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 자리잡고 오래 잘 사는 길이다.”(신명기 30장15a절, 20절)
우리민족을 비롯해서 중국인들 역시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의 길 중 참으로 생명과 행복의 길을 선택하길 기도해 봅니다.

<중국교회소개>

중국교회와
삼자(三自)정신

이번 호에선 중국교회의 기본정신인 ‘삼자'(三自)를 소개하겠습니다.
중국교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삼자’정신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삼자랑 자치, 자양, 자전을 의미하며 중국기독교의 기본원칙입니다. 자치(自治)란 중국기독교인들이 자신의 교회를 스스로 다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양(自養)이란 교회의 완전한 경제적 자립을 뜻합니다. 자전(自傳)이란 중국내의 선교는 중국인 스스로가 담당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중국기독교의 삼자정신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기점으로 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이 정신은 교회가 무신론정부 치하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채택한 것이라고 소극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아편전쟁이후, 서양의 군함과 대포, 경제력과 문화적 우세를 배경으로 들어온 서양의 선교방식에 대한 중국기독교인들의 반성이며,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뿌리내리는 교회적 실험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사회주의정부가 세워지기 전부터 이미 일부 중국기독교 지식인들 사이에선 복음의 참 의미와 중국문화와 상황간의 진지한 성찰을 하는 가운데 참다운 중국적 신학, 참다운 중국적 교회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비록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폐쇄적이고 낙후된 것 같고, 심지어 공산당의 사상적 통제에 있는 반쪽짜리(半)교회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지만, 이런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오랫 역사의 풍파- 예컨대, 문화대혁명기간 모든 종교는 탄압을 받고 갖은 조롱과 멸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를 헤치고 나온 신앙의 저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삼자정신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민족의 또 다른 한쪽인 북한의 기독교를 이해하는 연결고리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삼자정신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특별히 교회일치와 민족교회정신을 지닌 성공회의 정신은 이러한 중국의 선교경험을 장차 있을 통일선교에 어떻게 창조적으로 적용할 건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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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지하철 맨발의 전도사 최춘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요? 그분은 원래 목사님이셨고, 김포 근처에 엄청난 땅을 가지신 부자이기도 하셨는데, 모두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병을 앓다 다시 얻은 생명에 감사한다며 30년동안 지하철에서 전도와 나름의 각성 운동을 하시다가 지난해
지난해 성탄 때 찍은 가족사진입니다
1호선 지하철에서 앉은 채로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분에 대한 영상기록물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지요. 그분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스 코리아, 진짜 미스 코리아, 당신은 유관순, 와이 투 코리아?” “미스터 코리아, 당신은 진짜 미스터 코리아, 와이투 코리아?” “안중근, 당신은 진짜 안중근, 이순신, 진짜 이순신, 와이 투 코리아?”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당신들은 진짜 멋진 사람들이다. 유관순이나 안중근 그리고 이순신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조국은 두 개인가?

그분은 통일이 되기 전에는 신발을 싣지 않는다며 걸인처럼 광인처럼 돌아다니다가,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실제로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셨던 최춘선 할아버지는 기독교 신앙과 민족주의를 결합하여 아주 나약하고 초라한 방식이지만, 그것을 자신이 받은 소명이라 생각하고 육신의 힘이 다하는 동안 계속 돌아다녔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 시대의 모든 이들은 민족적 모순과 우리 민족내의 계층적 모순 사이에서 나름의 소명을 받게 마련입니다. 「십자가와 선교」 네 번째 소식지도 그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라 감히 고백합니다.
편집을 하고 있는 오늘, 달력을 보니 5월 18일이군요. 25년 전 광주를 생각하면서 우리 나라의 참된 자주와 통일을 다시금 염원해 봅니다.
사랑하는 이경래 전도사와 함께 성공회 성직자로 소명을 받고, 또 통일선교의 꿈에 동승한 것이 벌써 4년째 접어듭니다.  그 사이 저는 먼저 사제 서품을 받게 됩니다. 후원인 여러분,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좀 모자라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곁길로 새지 않도록 지켜보아 주시고 격려해 주십시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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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해 주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산본교회 아버지회, 평택교회 어머니회(김춘희), 대성당 에스더회, 꽃다지(대성당 새벽미사참여자모임), 지성희, 정진현(클라라), 권춘택, 오산제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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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선교 3호(2005.3.)

십자가와 선교
○제 3호 ○ 발행 : 이경래 전도사 ○ 편집 : 이한오 부제
○발행일: 2005년 3월 27일 ◯주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2동 443-20 ○전화 011-9884-7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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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선교는 통일 이후의 동북아선교를 준비하는 성공회 이경래 전도사의 비전을 나누는 중국교회소식지입니다
닫힌 부활, 열린 부활

이경래(베드로) 전도사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다.(요한 20,26)

얼마 전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가 평소 안면이 있는 한 할머니와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최근에 신문에서 봤다며 독도문제며 한국의 어떤 지식인이 친일발언한 일들에 대해서 비교적 소상히 알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이곳 남경토박이신데 어렸을 때, 일본군이 남경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광경을 몸소 목격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 때의 일을 회상하시면서 울분을 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중국사람들 역시 한국사람들 못지않게 일본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았고 우리 못지 않게 일본에 대한 감정에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정부나 극우인사들이 과거에 대한 망언을 할 때마다 그것이 중국이 되었든 한국이 되었든 이곳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곳 남경은 예전에 일본군이 약 30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곳이기에 그 한(恨)은 중국에서 제일 깊을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남경대학살기념관’에 간 적이 있는데 각종 기록사진들하며 생매장당한 뼈들을 보고 그 잔인함에 상당히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의 잘못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잔혹하게 십자가에 처해야 되나?”
최근에 일본의 한 지방정부에서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에 속하도록 하는 법안을 가결했습니다. 또한 일본은 중국과 조어도(釣魚島, 일본명 센카쿠열도)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저는 한 역사학자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역사는 핵물리학과 같은 파괴력을 갖고 있다.” 즉, 잘못된 역사인식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한 경고의 뜻입니다. 특히, 이곳 남경에 오는 일본학생들 상당수가 남경학살사건을 처음 듣고 직접 그 현장을 가보고 큰 충격을 받는 모습을 보며 진실된 역사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21세기는 동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날로 발전하는 경제와 국력은 이들 나라로 하여금 ‘화려한 부활’의 꿈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중국은 대만과의 통일을 통한 화려한 중화중심의 부활을 꿈꾸고,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과 동남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던 과거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저는 그 사이에 놓여있는 우리나라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에 있어서 이러한 시대에 선교적 사명은 무엇인지 묻곤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신 평화의 사명이 아닐까요?
복음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있는 제자들 한 가운데 오셔서 평화를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교적 사명도 바로 이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부활하신 예수께서 닫힌 문을 열고 한 가운데 오셔서 평화를 주셨듯이 우리 민족의 복음적 사명도 이웃 민족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의 영광을 추구하는 ‘닫힌 부활’이 아니라 모두가 진실로 화해하고 평화를 누리는 ‘열린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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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대학살 당시 기독교인으로 보이는 이를 처형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참 평화가 우리민족과 이 동아시아지역의 모든 사람에게 임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중국교회소개>

성요한 대학

북경대학, 청화대학은 중국에서 1,2위를 다투는 명문대학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사회주의국가가 되기 전에 상해에 있는 한 대학이 최고의 순위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학이 바로 성공회가 세운 성요한 대학입니다.
아편전쟁이 끝난 후, 1849년 6월 미국성공회 선교회는 윌리엄주교를 상해로 파송했습니다. 교육선교를 중요시한 미국성공회는 1865년과 1866년 배아서원(培雅書院)과 도은서원(度恩書院)을 각각 설립했습니다. 윌리엄주교 후임으로 주교가 된 사무엘주교는 중국선교경험을 토대로 미국성공회가 발행하는 잡지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제가 볼 때, 교육이라는 도구없인 중국민족에게 아무런 선교효과가 없습니다.  제가 대학설립을 제안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장차 그들에게 기독교와 기독교문명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주교의 호소에 미국성공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한 결과, 1879년 부활절, 앞서 세워진 두 개의 서원과 성공회신학교를 통합해서 성요한대학이 설립되게 되었습니다. 특히, 1888년 복방제(중국식 이름:卜舫濟)사제가 학장으로 취임한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미국뉴욕출신인 복방제사제는 유창한 중국어실력에 복장도 중국식으로 입고 중국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서양선교사들이 중국인을 경시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중국이 처한 사회적 어려움을 동정하고 서양국가들과 일본에 대하여 침략적 정책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문과, 신학과, 의학과, 영문과로 출발한 성요한 대학은 영어와 과학교육을 중점을 두었는데, 특히 영어교육은 당시 중국에서 제일 발달해서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대학은 “동방의 하버드”, “외교인재의 양성소”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어에 대한 과도한 강조와 지나친 ‘미국식’학풍은 1920년대 민족의식이 고양됨에 따라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요한대학은 줄 곧 중국사회에서 최일류의 자리를 고수했습니다. 그 주요원인은 대략 5가지입니다:
첫째, 설립연도가 다른 학교보다 빨랐다는 데 있습니다.
둘째, 당시 중국대학 중 처음으로 수업시간에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세째, 대다수 학생들이 당시 부요한 실업계의 자제들이었습니다.
네째, 다른 학교에 비해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실용주의적 학풍으로 중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실무적 관료양성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1949년 중국이 사회주의화되고, 한국전쟁에 중국이 참전함으로서 성요한 대학은 점차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성공회와의 관계도 단절되었고, 마침내, 1952년 전국의 고등교육기관이 전부 국유화됨으로써, 73년간의 학교역사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이상 간단하게 성요한대학을 통해 과거 중국에서 활동했던 성공회 교육선교를 회고해봤습니다. 성요한대학을 통해 성공회는 당시 중국인들이 가장 갈급해했던 시대적 요청에 부응했고 그것을 통해 복음을 효과있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국문화를 소홀히 하고 지나친 서구지향적 학풍으로 중국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한테 비판받았던 사실은 오늘날 선교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새겨들어야 할 타산지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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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십자가와 선교」 세 번째 소식지를 보내드립니다. 몇몇 분에게는 미리 전화를 드리지 못하고 구하지 않고  소식지를 보냅니다. 부담을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소식을 나누고 기도를 부탁드리기 위한 것이오니 양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와 도움을 바라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지를 누가 만들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또 교구나 특정한 교회의 조직적 결정과 책임 하에 진행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거 개인적인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스스로 던지게 됩니다.
하지만 저의 의문은 어리석은 것이었음을 곧 깨닫게 됩니다. 여러 교우님들과 신부님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젊은 날 그렇게 준비하고 서로 위하는 마음이 좋아보이며, 그래서 앞으로 주님의 도구로 크게 쓰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히 예수사랑 선교회의 어머니들을 비롯해서 기도해주시고 직접 후원해 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이경래 전도사는 결코 혼자 가서 혼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경래 전도사는 올해 안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하려고 합니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배우고 경험한 것을 우리 모두의 봉헌으로 하느님께 바쳐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후원해 주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산본교회 아버지회, 평택교회 어머니회(김춘희), 대성당 에스더회, 꽃다지(대성당 새벽미사참여자모임), 지성희, 이종민,  양만호.

■후원계좌
639001-01-068228
국민은행  이한오

십자가와 선교 2호(2004.12.)

십자가와 선교
○제 2호 ○ 발행 : 이경래 전도사 ○ 편집 : 이한오 부제
○발행일: 2004년 12월 20일 ◯주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254-2 ○전화 011-9884-7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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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성탄, 두 개의 중국
이경래(베드로) 전도사
십자가와 선교는 통일 이후의 동북아선교를 준비하는 성공회 이경래 전도사의 비전을 나누는 중국교회소식지입니다
[장면 1]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가 2장6-7절)
4년 전, 북경사회과학원소속 한 연구원이 북경시유동인구자녀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설문 중 ‘당신은 어디 사람입니까?’라는 객관식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개의 선택항목을 선정했는데 하나는 ‘외지인(外地人)’, 다른 하나는 ‘북경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설문지 회수 결과,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왔습니다. 적지않은 아이들이 두개의 문항 옆에 따로 한 항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중국인’
최근의 조사 결과, 도시로 들어온 농촌인구는 약 1억이라고 합니다. 1억의 인구 중 민공(民工: 돈을 벌기 위하여 상해, 북경 등의 대도시로 몰려드는 내륙의 농민들을 지칭하는 말)자녀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5-7%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이들 자녀들의 교육, 사회적응 등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2세대 민공’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해하고 있습니다. 호구제도(원래 배급제도를 위해서 도시와 농촌호구로 나눠진 이 제도는 배급제도폐지와 개혁개방이후 거주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민공들에게 불합리하게 작용하고 있음. 예컨대, 농촌호구를 갖고 있을 경우 도시에서 아무런 사회보장혜택도 받을 수 없고, 심지어 자녀들에게 기본적인 의무교육조차 시킬 수 없음)의 불합리한 제도적 차별로 교육의 기회뿐만 아니라 도시인들로부터 받는 차별대우 등으로 크나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북경에 온지 10년 되었다는 한 10대 소년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 생활은 시장에서 생선파는 것 외에는 길거리와 노점에서 간단히 끼니해결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이들 눈에 비친 성탄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쩌면 말구유간에 아기예수처럼 이들도 쉴만한 방조차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장면 2]

“그때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리고 보물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오 2장1, 11절)

13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중국은 현재 무서운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빠른 성장덕택으로 도시사람들은 해가 다르게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미 소비지향으로 변해버린 성탄절이나 발렌타인데이 같은 풍습들이 도시에선 기존의 전통명절보다 더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탄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대중매체와 각종 상술로 포장된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매료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과 연말연시가 되면 고급음식점부터 일반음식점, 백화점과 각종 상점마다 사람들로 엄청나게 붐비는 가운데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사가지고 어디론가 갑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아기예수를 찾으러 가는 걸까요, 아니면 헤로데를 찾으러 가는 걸까요?

[장면 3]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마태오 1장 21장)

부의 양극화현상은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가끔씩 접하는 한국소식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한국은 현재 무역이나 기타 문화산업이 잘되고 있고 한류열풍 등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 아시아일대가 한국의 문화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빠른 경제성장으로 국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고 외국인인제가 보기에도 참 대단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이나 중국이나 이러한 발전과 풍요로움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해마다 우리 곁에 오시는 아기예수는 우리 믿는 이들에겐 충만한 기쁨이자 동시에 아기예수와 함께 계속해서 수행하여야 할 구원의 사명일 것입니다. 그 사명은 바로 ‘하늘 높은 곳에 있는 하느님의 영광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비추는 평화'(루가 2장 14절)의 실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중국의 민공들과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이와 반대로 펼쳐져 있는 화려한 성탄의 풍경을 보면서 성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모두가 다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진정한 성탄을 희망해 봅니다.

■ <중국교회소개>

애덕기금회(愛德基金會)를 소개합니다.

애덕기금회(The Amity Foundation)는1985년 창립된 중국기독교의 사회선교단체입니다.
애덕기금회의 설립취지에 대하여 이 기금회의 창립자이신 띵구앙쉰주교(중국 절강성주교, 금릉신학교학장, 중국기독교협회명예주석)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중국기독교인들은 ‘오직 성경’과 ‘오직 믿음’만 있을 뿐 사회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복음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봉사하는 사랑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애덕기금회를 창립하게 된 이유입니다.”
총본부인 남경과 해외연락본부인 홍콩이외에 각지에 지부를 두고 있는 애덕기금회의  주요사업은 의료사업(맹안시술, 낙후지역 보건사업), 맹인교육사업, 농촌개발사업, 긴급구호물자지원사업, 성경인쇄사업, 교육사업(외국어 교육사업: 외국인 지원자와 재정상태가 열악한 중소도시 학교와 연결시켜서 낙후지역 교사와 학생들의 외국어능력배양)등을 하고 있습니다.
애덕기금회 사회선교활동의 특징은 첫째, 낙후지역, 소수민족지역,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둘째, 지역정부나 기관과 협력 속에서 일을 합니다. 셋째, 외국교회로부터 재정이나 인적도움을 고맙게 받지만 외국교회의 간섭은 배제하며 중국교회의 독자성을 존중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현재 중국은 크게 6가지 사회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농촌빈곤문제, 도시빈곤(실업, 민공의 복지)문제, 빈약한 의료체계(특별히 농촌), 마약과 AIDS문제, 자녀교육문제(특별히 농촌과 도시영세민계층), 노령화문제.
이러한 사회문제들 앞에서 중국기독교는 애덕기금회를 통하여 사회에 하나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해외의 여러 교회와 선교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자선하는 형태로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론 이러한 시혜적인 사회선교형태뿐만 아니라 중국사회와 중국교회자체가 스스로의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대한 성공회가 해 온 사회선교방법은 중국교회에 좋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대한성공회와 중국교회간에 협력을 한다면, 이러한 선교협력은 양 교회가 서로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신앙 안에서 우의를 깊이 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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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국인의 집에서 이경래 전도사 가족 사진

■편집인의 글
그리스도인들은 한 해를 ‘기다림’으로 시작합니다. 기다림은 만남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두근거리는 설레임과 가슴 벅찬 기쁨이 함께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만남은 그리스도를 내안에 모시고, 내가 그리스도처럼 살겠다는 결단을 하는 내면적 가치가 변화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달력이 송년회라고 떠들썩할 때 우리는 새로운 출발점에 이미 서서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출발점에 서 있는 사람들과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청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십자가와  선교’를 받아 보시는 모든 분들도 참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청년으로 거듭나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께서 기도해 주시는 이경래 전도사도 영원한 청년으로 살고자 이 길에 나섰습니다. 그 길에  난관과 장애도 있겠지만, 훌륭히 그것을 극복해 나가면서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성탄전에 보내려 했던 소식지를 이제야 보냅니다. 성탄과 새해인사를 함께 드립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후원해 주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산본교회 아버지회, 평택교회 어머니회(김춘희), 대성당 에스더회, 꽃다지(대성당 새벽미사참여자모임), 지성희, 이종민,  양만호

■산본교회 이경호 신부님과 교우님들  그리고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이경래 전도사에게 성탄카드를 보내왔습니다. 몇 대목 소개합니다.
– 혜연: 이경래 전도사님 안녕하세요? 중국에서 힘드시져? 그래도 참으시고 예배 잘 드리세요. 전도사님 아음 속엔 하느님이 계세요. 중국 경찰한테 잡히시면 안되요. 전도사님, 파이팅!
-병삼: 전도사님, 중국에서 힘드시죠. 힘들다고 주저 앉으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죠. 힘들어도 힘내세요.
– 소정: 전도사님 중국엔 위험해요? 위험하면 조심해요.

■후원계좌

639001-01-068228
국민은행  이한오

십자가와 선교 1호 (2004.10.)

십자가와 선교
○성공회 십자가와 선교 소식지 제 1호 ○ 발행 : 이경래 전도사 ○ 편집 : 이한오 부제
○발행일: 2004년 10월 5일 ◯주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254-2 ○전화 011-9884-7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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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발간에 부쳐
– 통일과 동북아시대를 준비하는 대한성공회의 선교를 위하여

이경래(베드로) 전도사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을 자다”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고 또 우리는 믿음으로 약속된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갈라디아 3,13-14)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여러 가지 말로 우리를 묘사할 수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저는 그리스도인은 미움을 사랑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분열을 일치로, 싸움을 평화로 바꾸는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우리가 믿는 십자가는 원래 저주의 상징이 아니었습니까? 그런 십자가를 예수께서는 구원으로 바꾸셨고, 이러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 역시 그런 ‘사명(Mission)’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Mission)’라고 번역한 이 말은 바로 이 사명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실로 다양한 영역에서 이선교의 사명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내적인 차원부터 시작해서 가정과 학교, 직장과 교회공동체 등 다양한 갈래가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와 늘 접하는 거라서 금방 느낄 수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역을 모두 감싸고 있으면서도 마치 물과 공기처럼 평소에 잘 느낄 수 없는 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민족, 나라가 아닐까 합니다. 즉 지금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세계최강대국들로 둘러싸여있는 우리민족의 현실입니다.
성서에서도 이스라엘백성들은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강대국들로부터 수많은 시련을 견디는 가운데 자신들을 지켜나갔고 하느님께 자신들의 민족구원과 해방을 갈망하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구원과 해방이라는 ‘공동체적 구원관’은 오늘날 남북으로 갈린 우리민족에게 하나의 큰 신앙적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성공회의 신앙전통은 각 민족이 서로 평등하고 자신들의 특성을 잘 가꾸어나가는 것을 존중하는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성공회 신도들은 이러한 성서의 ‘공동체적 구원관’과 성공회의 ‘민족교회’정신을 잘 살려서, 갈라진 채 서로 미워하는 남과 북을 하나되게 하고, 더 나아가 우리민족을 에워싸고 있는 동아시아 강대국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평화와 사랑의 정신을 실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성공회인들의 선교(사명)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교사명을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요? 아무리 뜻이 높아도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할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은 이 사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첫발을 내딛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실천은 어느 한 두 사람의 영웅적인 행동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설령 이것이 가능하다해도 그것은 진정한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될 수 없고, 성공회적인 것은 더구나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선교사명은 공동체의 이름으로, 공동체와 더불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자의 선교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하는 삼위일체의 선교이고, 교회는 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하나되는 선교이며, 선교사의 선교사명은 교회공동체와 일치하는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성공회는 공(公)교회전통을 간직하기에 선교에 있어서 ‘함께함’은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동체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선교사명에 부르심(은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니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지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을 이루고 있기에 각자가 받은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면서 나와 다른 이웃형제자매를 위해서 서로 관심과 기도와 도움을 주고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대한성공회 안에서도 우리민족의 통일과 해외선교에 대한 여러 형제자매들의 관심과 열의가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까지 서로 소통되지 못하고 하나로 모이지 못해왔습니다. 이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미래를 희망하고 믿는다면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지금 바로 구원의 겨자씨를 심읍시다.
이 소식지는 바로 이러한 마음에서 겸손하고 자그마한 첫 발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이 소식지는 우리 대한성공회 공동체가 우리민족의 하나됨을 위해서 그리고 그동안 단절되어 온 이웃나라 중국과중국교회를 위해서 주님의 선교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합니다. 그리고 이 소식지를 통해서 우리 성공회 형제자매들이 북한과 중국을 이해하고 더 많은 관심과 기도와 도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중국교회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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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래 전도사가 출석하는 중국교회의 예배모습

□홍콩 소식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중국기독교협회 공동주관으로 제1회 “중국교회 <성경> 사공전이 2004년 8월 6일부터 10일까지 홍콩국제회전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는홍콩사회와 기독교계가 중국내지(코뒈)의 성경사역을 보다 잘 이해하고 개혁개방 이후 진행된 중국내지의 성경발간사역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번 전람회는 매일 약 3만명의 사람들이 참관할 정도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중국양회(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중국기독교협회를 지칭)명예주석이자 전국정협부주석이고 절강성교구의 교구장인 띵구앙쉰주교는 전람회 개막식 축사에서 이번전람회는 중국인민들이 종교신앙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였다. 또한 홍콩성공회 쿠앙구앙지에 대주교는 이번 전시회로 그동안 일부 홍콩시민들 및 해외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중국내륙에 대한 오해와 의심을 씻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고 평하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내지와 홍콩기독교간에 더욱 밀접한 협력을 할 것이라고 하였다.
참고로 1980년 남경에서 애덕인쇄소를 설립한 후로 시작된 중국의 성경발간사업은 매년 약 250만권을 인쇄하여 중국각지로 보급하고 있으며 그 종류 역시 보통화 및 기타 다양한 소수민족언어로 발간되고 있다.

□상해 소식
2004년 8월 13일 오후, 상해국제예배당에서 션이판주교와 펑성용 목사 서거10주년추모예배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중국기독교협회회장 챠오셩 목사는 필립비서 2장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읽고 이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다. 그녀는 두 분이 ‘목자중의 목자, 종중의 종’의 정신을 참으로 실현하신 분이라고 회고하면서 중국교회의 목회자와 신도들은 이분들의 겸손한 정신을 본받자고 하였다. 이 자리에는 약 500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하였다.
참고로 션이판주교는 중국성공회의 주교로서 중국교회일치사업과 신학토착화사업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장수성 소식
남경에 위치한 금릉협화신학원은 새로운 신축교사건에 대하여 2004년 7월 20일에 정부로부터 공식인가를 받았다. 총면적 약 8000평방미터의 면적위에 짓는 신축교사건설은 총투자액 7000만원(한국돈 약 10억5천만원)이 소요된다.
참고로 중국교회(홍콩제외)는 현재 약 1500여 만명의 신도에, 공식 인가된 신학교가 18곳이 있고, 약3200개의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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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안녕하세요?‘십자가와 선교’라는 제목으로 중국 및 북한선교를 위한 소식지의 지면을 통해 인사드립니다.
이경래 전도사는 제가 신학교에서 성직을 준비하고 있던 2000년 봄, 당시 남북한의 화해분위기는 신학생이던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고, 북한 선교를 위해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신학생이 할 수 있는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북한선교를 한다고 해서 당장 북한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북한의 화해분위기도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불투명하게 전개될 미래이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을 던지고 움직이기로 하였습니다.
북한 선교를 위해서는 우선 같은 사회주의권인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의 기독교를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 중국행을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중국남경대학교 역사학부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한국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고 어학시험을 거쳐 이미 2년 정도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외국인에겐 신학교 입학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역사학과에 입하였습니다. 이제 약 2년 정도의 과정을 남기고 있습니다. 현재 프란체스카 사모님과 딸 에스더(3살)가 함께 남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영등포 교회에 출석하고 계십니다.
이경래 전도사와 함께 공부했던 선후배와 동료들은 그가 진지하면서도 우직하며 학문적 기초와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의 꿈이 개인적 성취를 위한 야심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적으로는 사랑하는 친구의 꿈을  돕고, 크게 보면 성공회의 해외선교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이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동안 아름아름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좀더 적극적으로 중국과 북한선교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이렇게 소식지를 만듭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하기 위해 단순한 편집과 복사판으로 제작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한오 부제

■후원해 주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산본교회 아버지회, 평택교회 어머니회(김춘희), 대성당 에스더회, 지성희 신부

■후원계좌
639001-01-068228
국민은행  이한오

귀국을 앞두고(2015.12.28)

자강불식(自强不息)과 목적이 있는 삶

– 귀국 후 중국선교 어떻게 할 것인가? –

 

Ⅰ. “선교학은 종합학문이다”

2010년 초 낯선 천진에 첫발을 디딘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횟수로 7년이 되었습니다. 중국정부의 종교정책이 외국인과 중국인간에 선교적 접촉을 금하고 있는 관계로, 대학교에서 중국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 신분으로 대부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중국선교를 위한 해외 에큐메니컬 선교단체인 건화기금회(建华基金会)에 가입하여 서양 선교사들과 교류하면서 함께 기도와 성서공부, 예배 그리고 때때로 그들과 함께 고아원과 장애우 봉사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 여러 지역에 있는 중국인 목사님들과도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으면서 중국교회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족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한국과 중국기업들간의 합작을 도와주면서 양국의 비즈니스에 대해서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 7년간의 중국 천진에서의 생활을 마무리 짓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곳에서의 삶을 돌이켜 볼 때, “선교학은 종합학문이다”라는 어느 선교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러한 중국에서의 다양하고 생생한 경험을 가슴에 담고서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때에 어떻게 하면 이러한 경험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저의 의견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Ⅱ. ‘지속가능한 선교(Sustainable Mission)’를 위하여

2000년부터 시작한 중국선교가 어느덧 17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중국어를 익히고 중국교회와 중국역사를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한성공회와 영국성공회가 함께 성직자의 신분으로 중국교회에 파송하려는 계획에 지원하여 여러모로 시도했습니다. 비록 종교에 있어서 중국은 여전히 ‘죽의 장막’이라 교육자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지만, 돌이켜 보면 이러한 중국당국의 정책으로 인해, 저의 선교지평이 제도로서의 교회라는 틀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교육, 문화, 복지, 심지어 ICT까지 다방면에 걸친 폭넓은 경험과 시야로 넓힐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종합학문으로서의 선교학’이라는 것을 실천으로 체득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한중간의 변화하고 있는 시대적 조류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 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7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체득해 온 선교적 노하우가 귀국 후, 사장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교단에서 몇몇 성직자들이 해외선교 내지 해외목회를 하고 귀국 후에 지속되지 못하고 단지 개인경험으로 끝난 사례들을 안타깝게 봐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속가능한 선교’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저의 ‘지속가능한 중국선교구상’을 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1.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지금까지 사목 혹은 선교라고 하면 ‘지역’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목을 위한 관할구역이 있고, 선교에 있어서도 국내 혹은 해외라는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낚는 어부(마르 1:17)’인 우리는 이제 ‘사람’에게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선교라는 개념도 ‘중국’이라는 국가, 지역과 같은 고정적이고 실체적인 대상보다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중국인’이라는 관계성에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교통통신이 발달하고 한국과 가장 많은 왕래를 하고 있는 중국인들에 대한 효과적인 선교를 생각해 볼 때, 종교적 제약을 받으면서 중국 내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보다는, 한국에 있는 많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자유롭게 접촉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한국에 나와 있는 많은 중국인들 중 저는 어떤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교육과 문화,그리고 비즈니스 선교

사람마다 달란트도 다르고, 경험세계도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낫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 남경대학에서의 유학과 천진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분야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영역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 문화선교 분야를 통해서 중국선교를 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귀국 후에도 중국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campus ministry 등과 같은 영역을 개척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문서선교의 일환으로 가칭 ‘중국신학총서 시리즈’를 통해 중국신학, 교회사, 교회예술, 교회인물 등을 한국교계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또한 중국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비즈니스 영역을 되살려 한중FTA가 체결되어 더욱 활발해 질 한중 비즈니스 영역에서 이른바 ‘비즈니스 선교’에도 도전할 계획입니다.

 

  1. 교량선교

최근 한중FTA체결로 한중간의 경제 및 인적 교류는 더욱 더 증가할 거로 봅니다. 17년 전 정 마태 주교님께서 앞으로 한중간에 교류가 커질 것을 대비해 우리교단에 중국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저를 남경대학에 유학 보내셨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 교단의 지원으로 오랫동안 중국이라는 한 우물을 판 제가 우리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중국 및 동남아 지역에 퍼져있는 ‘중화권 교회’ 그리고 향후 이북과의 평화적 관계 내지 통일을 위해서 중국과의 유대형성에 자그마한 교량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Ⅲ. 자강불식의 자세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말이 있습니다. 학문이든 무엇이든 일을 이루려면 쉬지 않고 수양하고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역(周易) 상전(象傳)편에 나오는 말인데 아래와 같습니다:

 

(乾卦)象曰:天行健,君子以自强不息;

(坤卦)象曰:地势坤,君子以厚德载物。

(하늘 괘) 하늘의 운행은 건실하니, 군자는 이와 같이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으며,

(땅 괘) 땅의 형세는 두텁고 유순하니, 군자는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순환이 끊이질 않고 이어지듯이, 심신을 단련하고 지혜와 덕을 닦길 쉬지 않고 하여서 드넓은 땅처럼 만물을 어질게 포용하라는 옛 성현의 말씀을 마음에 되새기면서 오래 전에 뜻을 세우고 꾸준히 걸어온 이 길이 귀국 후에도 중단 없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교님과 우리교회 동료 성직자 분들과 여러 성도 여러분의 기도와 도우심을 부탁 드립니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필립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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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기독교, 한국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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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2호선 합정역 7번 출구로 나와 양화진길로 200m 정도 들어가면 깔끔하게 단장된 외국인 선교사 묘역이 보인다. 여기에 안장된 외국인은 417명이며, 이 중 선교사는 145명이다. 몇 년 전, 이곳에 갔던 적이 있었다. 각각의 묘비를 보면서 나는 이역만리 먼 타향에 와서 살다 간 이분들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다.

『기독교, 한국에 살다』는 이러한 나의 궁금함을 해소해 줄 수 있었다. 성공회출판부에서 출간한 이 책은 한국기독교회협의회에서 ‘근대화에 기여한 기독교’에 초점을 맞추어서 한국기독교 100선을 선정한 한국기독교 역사서이다. 그리고 6개의 큰 주제(교육, 의료, 종교, 여성, 문화, 민족/민중)를 가지고 130년의 역사를 3개의 시기(1919년 이전/1919~1945년/1945년 이후)안에 배치하여 집필하였다.

기독교가 이 땅에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된 점들이 많지만 그 중 한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결핵환자를 위한 모금운동의 일환으로 발행한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을 처음 고안하여 발행한 사람은 미북감리회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었다. 그의 부친 윌리엄 홀은 1894년 청일전쟁 발발했을 때, 평양에서 헌신적으로 환자와 부상자를 돌보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별세하였다. 그의 모친 로제타 홀 역시 의료선교에 헌신하여 맹인을 위한 점자책을 이 땅에 처음 도입하였고, 평양에 맹인 및 농아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와중에 셔우드 홀의 여동생은 어렸을 때 이질로 생명을 잃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친 사후, 가족이 잠시 미국에 귀국했을 때 동행했던 박에스더와 그녀의 남편 박유산 역시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박에스더(김점동)가 미국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의학을 공부하는 동안 그녀의 남편 박유산은 6년 동안 노동을 하며 아내의 공부를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박에스더의 졸업과 귀국을 두 달 남짓 앞둔 1900년 4월 박유산은 급성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남편을 미국에 묻고 홀로 귀국길에 오른 박에스더는 한국최초의 여자의사로서 의료활동을 시작한지 10개월 동안 3천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는 등 10년 남짓 본인의 몸을 돌보지 않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한 나머지 결국 폐결핵으로 1910년 3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셔우드 홀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

나는 이병을 퇴치하는 데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나는 반드시 폐결핵 전문의사가 되어 조선에 돌아올 것과 결핵 요양원을 세우기로 굳게 맹세했다. 이 맹세를 실천하기 위해 4년 전 닥터 하이디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 준 말을 수없이 되새겼다: 높은 이상과 고상한 동기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실천하기 미흡하다.
『닥터 홀의 ‘조선회상’』에서

그 후, 그는 1928년 해주에 한국 최초의 현대식 전문 결핵요양원을 설립, 운영하였다. 세월이 한참 흘러 그들의 생존소식을 안 대한결핵협회는 1984년 91세인 셔우드 홀과 88세인 그의 아내 메리안 홀을 한국에 초청했다. 변변한 양복 한 벌이 없이 검소하게 살고 있던 노 부부 선교사에게 한국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1991년 셔우드 홀은 9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몸은 한줌의 재가 되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묻힌 양화진 묘지에 안장됐다. 그리고 5개월 후, 그의 아내 메리안 홀도 남편의 뒤를 이어 가족과 합장됐다.

코스모스 피는 가을의 청명한 하늘이 오고 있다. 『기독교, 한국에 살다』라는 책을 끼고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가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거기서 우리는 잊혀진 그분들의 삶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마도 과거의 이야기가 오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2004년 겨울에 남경에서 썼던 편지

000 신부님께
중국 남경에 있는 이경래 전도사입니다.

중국은 회수(황하와 양자강 중간에 있는 강)를 경계로 남쪽에는 난방시설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 남경은 겨울엔 자주 비가 와서 습기차고 차가운 기운이 방안을 감돌고 있습니다. 식구들이 작년에는 처음이라 힘들어하고 아기가 감기로 고생했는데 올해는 적응이 된건지 아직까지 큰 탈없이 잘 버티고 있습니다.

저는 학점이수과정을 끝내고 다음학기부터 논문쓰는 작업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외국인으로서 3년만에 졸업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경제적 사정이 넉넉치 못해서 3년만에 끝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벌써 반이 되었는데 좀 신경이 쓰이는군요.

애초에 중국기독교역사에 대하여 연구할 계획이었는데 요사이 생각이 좀 바뀌고 있습니다. 좀더 근본적인 것을 건드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여기와서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중국사회를 보면서 중국이란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등등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통일선교도 이러한 전체시야속에서 함께 고려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쯤 중국헌법에 자본가도 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게 정식으로 채택되고 사유재산보장도 헌법에 명문화된다고 합니다. 사실, 법이라는 것이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사후추인이기에 현재 중국사회는 명목상 사회주의뿐이지 벌써 자본주의 그것도 권력체제의 비호를 받는 마치 우리나라 7,80년대 개발독재기의 자본주의형태인 것 같습니다. 강력한 지도력으로 경제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공산당권력집단과 자본계급간의 부적절한 밀착, 이에 파생하는 부패문제, 빈부의 격차, 그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한 언론통제등이 중국이 안고 있는 내부문제라고 보여집니다. 사실, 지식인들은 내심 공산당에 대한 반발이 있지만 천안문사건좌절과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민주화요구보다는 경제적 관심과 개인적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고 대다수 대중은 불만은 있지만 일정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지도부는 더 이상 사회주의이념만으로는 사회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부쩍 중화주의부흥이니, 중화민족단결이란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이 앞으로 중화민족주의를 통해서 내부적으로 발생하는 불만을 봉하고 대외적으로는 영향력을 팽창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우려하는 것은 중국의 ‘(신)중화질서’라는 중심주의와 일본의 ‘(신)대동아공영권’이라는 중심주의가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한반도라는 사실입니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역사를 중국의 역사라고 우기고 이에 근거해 유사시 북한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내세워서 북한땅에 진주한다면 우리에겐 통일의 꿈도 산산히 부서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듭니다. 지금의 상황은 청일전쟁, 해방이후의 상황처럼 어려운 상황같이 느껴집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완 달리 우리민족의 역량이 호락호락 휘둘릴 정도가 아니라는 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요사이 저는 지금까지 우리사회가 ‘진보와 보수’라는 패러다임으로 우리사회를 지금까지 추동했다면 앞으로는 ‘국내와 국제’라는 패러다임의 확대를 통해서 변화의 추동력을 보는 시야가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내부의 문제에만 골몰할 때 한반도주변에는 미국의 무자비한 공세와 일본과 중국의 발흥하는 공격적 민족주의에 뒷통수를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반도의 통일을 생각할 때 제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십자가와 십자로’입니다. 부정적으로 볼때 양쪽다 형벌이나 동네북과 같지만 긍정적으로 볼때 이것은 막힌것을 이어주는 교량과도 같다고 봅니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처럼 고통과 시련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막힌 것을 뚫기위한 구원의 도구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통일은 그래서 우리민족의 화해만이 아니라 근세이래로 격돌해온 열강들의 탐욕을 종식시키는 해방의 과정이 아닌가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통일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지금으로 단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섭리속에 안배되어 있겠지만 말입니다. 지금 시점에선 주님의 눈으로 이시대와 역사를 보는 눈을 키우는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당시 이스라엘을 본 것처럼 말입니다.

오랫만에 두서없이 생각의 단편들을 적어봤습니다. 신부님께서도 그곳에서 좋은 경험쌓으시고 건강하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남경에서 이경래 베드로 올림

유빈이만든 십자가

유빈이가 만든 십자가